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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나라는 지금 몇시인가 - 홍남표

홍남표(출판인)

한 인간의 인격이나 집단의 정체성은 사유와 종교, 깅거들의 축적과 길들여진 교육과의 친화력 그리고 한 가문의 전통과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격이나 정체성이 없다면 개인은 부랑아가 되고 집단은 형편없는 유목민이 된다.

 

조금은 소란스러웠고 이념이나 사유가 신용과 관능에 묻혀버린 세모때의 일이다. 추운 겨울, 음산한 하늘아래 검은 태안반도는 시름속에 있는데 TV는 초로의 가수 나훈아가 격하게 바지춤을 내리려는 장면을 한참 동안이나 방영했다. 한쪽에서는 오빠 부대가 바지를 내리면 안 된다고 자지러졌다.

 

전국의 유수한 신문들은 탄력있는 몸매에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훌륭한 회견이라고 탄성을 발했다. 그리고 연예지에나 실릴 이 기사로 온 지면을 도배했다.

 

어떤 교수는 철학자 벤담과 푸코까지 들먹이며 다수가 소수를 감시하는 시높티콘(synopticon)과 소수가 다수를 감시하는 판놉티콘(panoption)의 개념을 나훈아 소문과 연계해서 설명했다. 정보사회의 개인생활 침해와 오웰의소설 ‘1984년’이 제시하는 철학적 문제까지 거창하게 거론했다.

 

나훈아에 관한 괴담은 2006년 공연계획이 취소되면서부터 일기 시작했으니까 소속사가 적절하게 해명했으면 초기에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어쨌든 나훈아는 이 회견으로 공연 한번 한 셈은 되었고 얼마동안은 대중에게 망각되는 걱정은 면하게 되었다. 비약해서 말한다면 신문이나 방송이나 국민들이 나훈아에게 농락당한 것으로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나훈아 회견의 뒤를 이어 도하 신문들은 규제개혁과 탁상공론의 작폐로 상징되는 산업단지의 전봇대 철거를 대서특필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5년동안 철거를 못했던 산단의 전봇대를 단 2시간만에 이명박 당선인의 한마디로 철거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감전위험이 있는 비오는 날에 단행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또 한번 탄성을 발했다.

 

그러나 산단의 전봇대는 이미 시작된 전선주 지중하 사업으로 곧 없어지게 되어 있던 일이었다. 대서특필된 기사가 수송과 유통에 절대적 장애가 되던 전봇대 철거의 효용성을 강조한 것이라면 전봇대와 인접한 도로의 확장과 43톤 이상의 화물차는 절대로 통행할 수 없었던 교각의 개설도 부연해야 옳았던 기사였다. 새만금 개발에 관한 기사도 그렇다. 20년 후에야 만들어 질지도 모를 땅을 가지고 금방이라도 두바이 같은 도시를 건설할 것처럼 뛰어댔다.

 

초저녁 넋이 나간 닭이 시도 때도 모르고 울면 인근에 있는 닭들이 새벽인 줄 알고 너도 나도 따라운다. 자칭 진보세력은 아직도 한국사의 모든 불상사를 보수세력의 과오로 생각하는 미망에서 못 깨어나고 있고 TV속 삼성의 총수는 무표정하다. 삼성비리를 고발한 변호사는 한점 부끄럼없이 수사관처럼 당당하다.

 

지금 우리는 정치와 도덕과 애증, 신념과 실용, 진보와 보수 속에서 막막한 미아가 되어 있다. 활로는 해답은 권력을 감시하고 진실을 두려워하며 역사가 주는 교훈을 아는 신문과 방송이 지금 우리나라가 몇시인가를 정확히 알려주는 길 뿐이다.

 

/홍남표(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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