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한(전주교대·美 메릴랜드대 연구교수)
아이들에게 매일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짧은 물음이 있다. 학교에서 돌아올 땐 "숙제 있니?", 그리고 잠자리에 들어서기 전엔 "숙제는 다 했니?"가 그것이다. 아이들은 미국 학교에 다니면 숙제로부터 해방될 줄 알았지만, 숙제는 여전히 그들의 주요 일상이다. 숙제는 아이들과의 작은 대화의 창구를 열어주기도 하고, 그러나 때론 서로의 얼굴을 붉히게도 한다. 오랫동안의 교육방법으로 애용되어오고 있는 숙제는 교육계의 논란의 대상이기도 하다. 숙제가 학생들의 학업능력 향상과 학습습관을 가져오는 중요한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방과 후에도 학업이 연장됨으로써 학생들의 성장과 인권을 침해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논쟁에도 불구하고, 숙제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신화로 자리하고 있으며 그들은 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미국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숙제는 미국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방과 후 활동이다. 메트 라이프(Metlife) 회사의 통계 조사 결과(2008년)를 보면 중?고등학생이 초등학생에 비해서 2배 정도 많은 숙제가 부과되고 있고, 학생들의 77%가 숙제를 하는데 매일 적어도 30분을, 45%가 1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성적이 낮은 학생에 비해서 숙제를 하는 시간과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은 복습이나 시험 준비, 바른 학습 습관 형성을 위하여 학생들에게 숙제를 부과하며 그것을 처리하는데 주당 8.5시간을 투입하고 있었다. 학부모의 경우 학부모의 절반은 부모의 도움이 없이 숙제를 해야 한다고 보고 있지만, 초등학생 부모의 84%, 중등학생 부모의 61%가 자녀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 결과로 보면,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숙제 부과량이 늘고 있다. 실재로 중?고등학생의 경우 영어, 수학과 과학 과목은 숙제가 거의 매일 부과되고 있으며, 우수반이나 영재반 수업에서는 더욱 많고 어려운 숙제를 내주고 있다. 그리고 숙제가 학습활동의 연장선상에서 학생들에게 중요하게 부과되기 때문에 숙제 이행 정도는 학생 성적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이는 곧 학부모들이 숙제를 학생 스스로가 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자녀들의 숙제에 개입하게 만든다. 특히 영어이해능력이 낮은 학부모나 자녀의 학력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학부모의 경우, 학생들의 과제를 사설 학원이나 과외교사 등의 도움을 받아서 수행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사교육 시장은 날로 확대재생산 되어가고 있다.
숙제는 누구에게나 하기 싫고 부담스러운 기억이 있다. 하지만 숙제의 매력은 해결가능한 과제를 부과함으로써 학습자의 흥미를 자극하는데 있다. 너무 어려우면 학생이 아닌 변인들의 개입이 커지고, 너무 단순하고 쉬운 것이면 학습자의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 교사는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은 매력적인 숙제가 교과 수업의 앞과 뒤에서 충실한 보조 역할을 하게 하여 자신의 수업 속으로 파고들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때에 숙제는 수업과 보다 긴밀하게 연계되고, 그 결과가 다시 평가의 대상이 되는 선순환 체계를 갖추게 되어 그 본연의 기능을 살릴 수 있다. 이 매력적인 선을 넘나들며 숙제를 부과하는 교사가 넘쳐나길 바란다.
/이경한(전주교대·美 메릴랜드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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