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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아들을 군대 보내며 - 유대성

유대성(왱이집 대표)

군복을 입은 어린 손님이 눈에 띄었다. 나이를 물으니 아들과 동갑이다. 괜히 가슴 한 쪽이 아파지면서 목소리가 떨리는 듯했다.

 

큰 아이가 군대에 갔다.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입대하던 날, 부대 앞까지 따라가서 눈물로 수건 하나를 다 적시고 온다는 여느 엄마들과는 달리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아빠와 작은 아이만 보내고는 가게에 남았다. 예약 손님이 있어서기도 했고 부대 앞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이 어째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소포가 도착했다. 아이가 입고 간 옷과 신발, 소지품들이 담긴 상자... 나도 역시 엄마인가 보다. 아이의 체취가 채 가시지 않은 옷 위로 눈물이 뚝 떨어졌다. 가만히 가슴에 안아보았다. 내가 내 아이를 이렇게 안아준 게 언제였을까?

 

아이의 짐을 갖다 두기 위해 아이의 밤에 들어갔다. 아이가 군대에 간 후 아마 처음 들어온 것 같았다. 늘 깨끗하게 정돈해놓던 침대 위에 입던 옷가지가 널려 있었다. 옷을 들어올리니 툭 떨어지는 아들의 편지....

 

대학입학시험 당시, 지금 가장 간절히 생각나는 게 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다른 아이들은 '이 학교에 꼭 합격하고 싶다'고 답할 때, '이 추운 날씨에 밖에서 떨며 기다리실 엄마가 걱정돼서 빨리 가보고 싶다'던 속 깊은 아이... 엄마는 제게 줄 수 있는 걸 다 주려고 애를 썼는데 저는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다고... 고생하며 제 뒷바라지 한 엄마를 생각하면 아무리 힘든 훈련도 웃으며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편지에 담겨있었다.

 

유난히 살가웠던 아이... '엄마는 가슴이 차가워'라고 가끔 얘길 하던 아이가 군대에 갔다.

 

나는 사남매 가운데 막둥이 외동딸이었다. 큰 오빠와는 아홉 살 차이가 나는데, 오빠가 군대에 가던 때가 기억난다.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다녀온 오빠 주머니가 두둑했다. 그 주머니가 부럽고도 심술나있는데, 불쑥 내게 주머니 속의 돈들을 내놓는 것이었다. 군대 가면 필요 없으니 갖고 싶은 것도 사고 요긴하게 쓰라는 말과 함께였다. 오빠가 군대에 가니 좋은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내 방이 생겼고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는 간섭이 줄었다. 그래서 나는 은연 중에 작은 오빠도 어서 빨리 군대에 가길 바랐다. 그랬으니 오빠들을 군대에 보내며 어머니가 눈물 흘리던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 어머니가 되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불 끈 방에서 아이의 물건을 만지며 눈물 흘리는 어머니가 되었다.

 

아이가 보낸 편지가 도착했다. 훈련소 이야기들, 잘 지내고 있노라는 인사와 함께 그린 그림. 얼굴과 팔이 까맣게 탄 훈련병 하나가 편지지에 그려져 있었다. 아차, 아이의 짐에 썬크림을 넣지 않았었다. 필수품이라고 하던데 어미가 이리 무심했다니...

 

아이의 퇴소식에는 꼭 가리라 마음먹는다. 검게 그을린 아이 앞에 서면 나도 눈물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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