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현(아파트관리사무소 소장)
지난 8월 3일 새벽 5시 30분. 모악산 돌비석 앞에 '이모작' 팀원들이 모였다.
'이모작'은 매주 일요일 새벽 '하루를 이틀처럼 산다'는 깃발아래 새벽 산행을 위해 모인 이들의 모임.
올해 3월에 시작해 벌써 6개월째다.
"맨발로 한 번 가볼쳐?"
특유의 친화력, 박력과 배려가 넘치는 박선생님의 권유같은 강요가 은근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에라 ~' 하면서 신발을 벗어 차안에 놓고 온다. 뒤이어 희망 선생님, 명랑 선생님이 맨발로 뒤따른다. 하얀 맨발들이 비에 젖은 촉촉한 모악산을 오른다.
언젠가 박세리의 하얀 맨발이 전 국민을 감동시킨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하얀 맨발만 보면 어느 CF에서 배경음악으로 나왔던 양희은의 노랫소리와 그녀의 하얀발이 오버랩되면서 맨발은 늘 하얀색이 아닌 투명함으로 내게 다가와 대책없는 뭉클한 감정이 먼저 가슴을 헤집고는 한다.
어쨌든, 우린 맨발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흙이 비에 씻겨간 까닭에 바닥은 조금 더 거칠어져 있었다. 맨발의 촉촉한 촉감은 잠깐, 이어져 오는 통증에 발바닥은 온통 아우성을 쳐댔다.
허나 고통도 반복되다 보면 익숙해 지는 것. 사실 어찌할 도리가 없기도 했다. 신발은 이미 차 안에 두고 온 것을. 조심조심 발을 옮겨 대원사까지 다다랐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조금 살 것 같다. 마당흙의 보드라움이 맨살을 간지럽힌다. 발등을 스치는 풀잎들이 장난을 걸어 오면서 새살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발가락 사이로 '쭈욱~' 흙이 올라 오는 느낌은 살아있는 땅의 육성을 듣는 듯 했다.
잠시 절간의 툇마루에 앉아 박선생님께 시낭송을 청했다.
조지훈 님의 '승무'에 이어 박규리님의 '치자꽃' 설화가 이어졌다.
맑은 물소리와 고즈넉한 산사 풍경, 운무에 허리를 휘감긴 산봉우리들의 초록이 눈이 아프도록 선명했다. 추적추적 하염없는 빗방울을 배경삼아 가만 시를 듣고 있자니 잠시 온 세상 시간이 멎은듯 했다.
처마 끝에서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가슴으로 사무쳐 나도 고만 설운 눈물 방울 하나 똑 떨어질 것 같아 서둘러 툭툭 털고 일어나 길을 재촉했다.
비도 오고, 맨발 사정도 있고 하여 우리는 대원사에서 발길을 돌린다.
맨발이라서 좋은 게 또 있다. 바로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
망설임 없이 계곡물 속에 들어가 잠시 물고기들과 친구하고 물장난도 해볼 수 있다.
맨발로 산을 만나고 온 날. 맨살로 온 몸으로 누워있는 모악산을 전면적으로 만나본 날이다.
교감! 그것은 내면에서만 느껴지는 쌍방 교통이다.
비언어적인 교감은 말로는 다 표현될 수 없는 수많은 신호들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마치 여름밤 평상에 누워 올려다 본 하늘에서 무수히 쏟아져 내리던 별비처럼 말이다.
내가 맨발로 새벽 모악산과 커뮤니케이션 하였듯이, 나비가 꽃을 찾고, 민들레의 홀씨가 세상을 향해 도움닫기하는 절실함도, 결국은 세상을 향한 커뮤니케이션이다. 당신을 향한 커뮤니테이션이다.
당신은 오늘 , 무엇으로 세상과 통(通)할 것인가.
/이숙현(아파트관리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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