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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서 금제사리기 발견

문화재청 19일 발굴성과.현장 공개

'서동 왕자' 백제 제30대 무왕(武王.재위 600-641년)이 창건한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서탑(西塔)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탑 창건 내력을 밝혀주는 금제(金製) 사리기(舍利器)를 비롯한 중요 유물들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18일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19일 오후 발굴현장에서 유물과 함께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륵사지 서탑 해체 발굴조사단인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문화재청 주요 관계자들은 이건무 청장의 함구령에 따라 이와 관련한 모든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백제 사리기는 지난 2007년 부여 왕흥사지 목탑터에서 발견된 창왕(昌王) 시대(577년 제작) 사리기 이후 두 번째다.

 

1995년 부여 능산리 절터 목탑터에서도 같은 창왕 시대인 567년에 제작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百濟昌王銘石造舍利龕.국보 288호)이 출토됐으나, 이 사리감 안에 있었을 사리기는 없어진 상태로 발견됐다.

 

사리기(舍利器)는 석가모니 부처의 유골인 사리(舍利)를 담는 그릇을 총칭하는 명칭으로, 불교에서는 탑(塔)을 부처의 무덤으로 간주하는 까닭에 탑을 만들 때는 거의 예외없이 심초석(心礎石) 주변에 안치하며, 탑을 조성한 내력을 적기 마련이다.

 

왕흥사지 사리기의 경우, 청동합(靑銅盒) 안에 좀 더 작은 은제(銀製) 사리호(舍利壺)를 넣고, 다시 그 안에다가는 금제(金製) 사리병(舍利甁)을 안치하는 3중 구조로 제작했다.

 

이번 미륵사지 서탑 금제 사리기 명문은 연구소에서 판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익산 미륵사(彌勒寺)는 신라 진평왕의 딸로 미모가 특히 빼어난 선화(善花)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인 백제 서동 왕자가 나중에 왕이 된 뒤에 이 왕비를 위해 용화산(龍華山) 아래 지었다고 하며, 그 정확한 창건시기는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금제 사리기는 이와 관련한 지금까지의 여러 가지 의문점을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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