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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역사박물관 7주년 '정여립 사건과 기축옥사' 학술대회

"기축옥사로 호남사림 관직 막히지 않았다"

'천하는 백성의 것이지 임금 한 사람이 주인이 될 수는 없다. 누구든 섬기면 임금이 아니겠는가.'

 

봉건사상을 거부한 진보적인 사상가 정여립(1546~1589).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이동희)이 개관 7주년을 맞아'정여립 사건과 기축옥사'를 주제로 한'제9회 전주학 학술대회'를 3일 오전 11시 역사박물관 녹두관에서 연 가운데 그의 생애와 사상, 영향 등이 재조명됐다.

 

최영성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정여립의 생애와 사상' 주제 발제를 통해 "정여립은 의리사상, 정통론,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주자학적 지배질서를 거부하고, 후천개벽 또는 후천세계에 대한 기대로 사상적 진보성을 드러낸 인물이었다 하더라도 그를 신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동학농민혁명, 증산교, 원불교 등이 전라도에서 발생된 것도 후천세계에 바탕을 둔 대동사상 영향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희환 전북대 교수는'정여립 옥사의 실상과 그 영향' 주제 발제에서 "'기축옥사'는 동·서인의 갈등에서 동인을 물러나게 하고, 송익필·정철 등 서인의 음모에 의한 허위자백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화를 당한 옥사요 사화였다"며 "당쟁이 세습되고, 사상의 다양성이 제한 받았으며, 동인이 남·북인으로 분열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교수는 '정여립의 역모', '정여립의 모반', '기축옥사','정여립의 옥사' 등으로 불리워지고 있으나, 사건 자체에 역모 성격이 이미 포함돼 있는 만큼 '정여립 옥사'로 정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은  '정여립 모반사건 이후 호남사림의 동향'주제 발제를 통해 "기축옥사로 인해 호남사림의 학맥이 단절되고, 관직진출에 장애가 될 정도로 위축된 것은 아니었다"며 "17세기 이후 전라도 문과급제 점유율이 충청도에 밀리지만, 식년시는 조선말까지도 전라도가 우위를 점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호남사림의 등용을 막은 것은 지방 홀대, 모역 등으로 인한 호남에 대한 편견이었다고 강조했다.

 

'정여립과 기축옥사의 발자취' 주제 발제에 나선 신정일 우리땅걷기 이사장은 기축옥사의 진원지인 대동계를 조직했던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그의 생가가 있는 완주군 상관면 월암리, 의문사한 곳으로 알려진 진안 죽도에서 정여립에 대한 재조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전남 장성이 홍길동을 주제로 여러 행사를 벌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주역사박물관이 주최하고 전주시와 전주학추진위원회가 후원한 이번 학술대회는 개관 7주년 기념식과 '기산 풍속도, 그림으로 남은 100년 전 기억'의 전시 개막식도 이날 함께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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