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치주민들의 건강도우미자 상담사죠"…주민과 동고동락 소박한 행복 누려
"진료소에 불이 켜 있으면 우리 맴이 그 불 맹키로 환해져서 을매나 맴이 놓인지 모르당께. 아, 그냥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응께로 노상 가서 주사도 맞고 약도 타고 소장님이 주시는 맛난 차도 한잔 얻어 묵고 일흐기 싫으면 가서 이냥저냥 얘기도 흐고, 참말 좋아."
지난 8월 28일 오후 2시 남원시 운봉 덕치보건진료소에 들어서니 속병이 나서 약을 타러 오신 할머니를 배웅하는 이가 있다. 주민 600여명의 건강을 지키면서 동네 사랑방을 일구는 양명옥 소장(47). 광주 출생인 그가 이곳에 터를 잡게 된 것은 13년 전이다.
그는 본래 간호사였다. 기독교 신앙을 중심에 둔 그는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자"는 자신의 철학대로 보건진료소 근무를 자처했다. 광주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8년간 몸을 담았던 시간이 지금의 삶을 이룰 수 있었던 밑바탕이 되었다며 환하게 웃는 그는 진료소를 지키는 소장이라기 보다는 이 마을 주민 같다.
보건진료소는 감기, 관절염, 신경통, 비염 같은 기초적인 진료와 예방 접종이 주를 이룬다. 의사가 없기 때문에 응급처치와 고혈압, 당뇨 등 주민들의 지병을 먼저 발견해 예방하는 업무가 대다수를 이루게 되는 것.
특히 군과 읍·면 단위에선 보건진료소가 병원보다 훨씬 인기다. 밤낮 구분없이 방문할 수 있는 데다, 마치 가족처럼 지내기 때문에 심리적 문턱이 낮기 때문. 환자 상태에 맞는 병원에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양 소장은 "처음 이곳을 맡을 때만 해도 제대로 갖추어진 시설이 아닌 데다 늘 잔병치레를 하는 어르신들이 많았다"며 "여생을 위해 건강하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돕는 자리"라고 말했다.
한번은 많은 눈이 내려 도저히 시내로 갈 수 없었던 밤에 경기를 일으킨 아이로 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아이가 의식 없이 엄마 품에 안겨 진료소에 왔었어요. 밤새 같이 지켜보며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던지. 이제는 그 아이가 벌써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되어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마을 주민과 같이 하는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정말 감사하는 삶이 되지요."
지난 2005년엔 진료소도 새로 짓게 됐다. 그는 마을 어르신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정성으로 돌렸다.
도내에만 해도 보건진료소는 243곳이나 된다. 밤낮없이 찾아오는 환자들이 여전히 있긴 해도, 업무량도 줄었고, 출퇴근까지 가능해져 이전보다 근무환경은 좋아졌다며 이런 소박한 행복을 일구는데 뜻이 있는 이들에겐 참 좋은 직장이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현재까지 근무해왔던 것처럼 주민들과 함께 가족과 같은 삶을 일구며, 언제든지 쉬고 싶을 때 찾아 오실 수 있는 곳에 있는 사람, 필요할 때 언제든지 옆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리산 자락을 지키는 느티나무처럼 그는 오늘도 진료소 문을 열어 놓고 사람들을 위한 커다란 그늘을 내놓고 있다.
/이진선 여성객원기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