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용(편집부장)
한자 지명의 전주는 온전한 고장이고, 완주는 완전한 고장이다. 온전하다는 건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는 상태를 말하며, 완전하다는 건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는 뜻이다.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전주와 완주는 그 자체로 온전하고 완전한 고을이어서 굳이 통합이니 뭐니 시끄러울 필요가 없는 지명을 갖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현실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두 지역을 합한다면 온전하고 완전한 이름에 걸맞은 고을을 탄생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올 수 있다.
지명만 갖고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하물며 이해관계가 따른다면 말할 나위도 없다.
요즘 지역의 최대 이슈인 전주-완주 통합에 대해 기자의 시각을 묻는 지인들이 많다. 특히 통합이 가능한지 궁금해 한다. 유감스럽게 기자도 그게 궁금하다.
전주시민과 완주군민들이 느끼는 필요성, 지역 정서적 측면, 행정의 효율성 등 여러 면에서 통합의 당위성은 분명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통합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지 않는 것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마음으로 다가서는 것 간에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의 통합 추진을 해온 전국적인 사례를 보더라도 통합문제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청주-청원으로, 이곳은 전주-완주와 여러 모로 닮았다. 전주-완주처럼 한 곳에서 분리됐고, 청주시의 적극적인 공세에 청원군이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도 비슷하다. 청원군 역시 오송생명과학단지와 같은 신 산업단지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으며, 통합으로 인해 오히려 기피시설 등만 들어와 지역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반대 논리도 닮았다.
사실, 청주-청원은 과거 두 차례나 통합 주민투표까지 했을 정도로 그 열기나 경험이 전주-완주에 앞섰다. 청주지역 기존의 시민단체들이 통합에 힘을 보탰고, 2000년 통합 추진때는 현직 청주시장이 통합시장으로 불출마 선언까지 했다. 그럼에도 결국 청원군 주민들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물론, 청주-청원의 실패한 사례를 그대로 전주-완주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완주 주민들의 통합 열망이 더욱 간절할 수 있고, 전주와의 정서적 유대가 더 가까울 수 있다. 전주 인근의 완주군 주민 수가 많아 찬반 투표로 갔을 때 찬성표가 더 나올 수도 있다. 실제 지난 13일 실시된 전주MBC 여론조사 결과 완주군에서도 통합 찬성 응답이 많았다.
그러나 현재 전주-완주 통합논의 과정을 보면 청주-청원 통합논의 과정보다 나은 게 없어 보인다. 청주처럼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아니고, 현직 시장의 통합시장 불출마와 같은 이벤트도 없다. 완주군수를 비롯, 완주지역 여론 주도층의 반대도 넘어야 할 산이다. 지금은 잔잔해 보이지만, 막상 투표일이 잡히면 어떤 식으로 찬반 갈등이 커질 지 예상하기 힘들다.
통합으로 가는 길을 찾는다면서 지역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통합 논의가 잘 진행돼 양 지역에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더할 나위 없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떻게 논의를 진행하느냐에 따라 그 자체만으로 얼마든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완주군이 제시한 통합 이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전주시가 어제 전격 수용한 것만으로도 벌써 의미가 있지 아니한가.
통합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마당에 너무 경직되게 몰아붙이지도, 무작정 반대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통합이라는 결실을 당장 따먹지 못하더라도 통합의 씨를 뿌리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본다. 찬반을 주도하는 인사들이 긴 호흡으로 축제적 분위기 속에 통합 논의를 진행하길 기대한다.
/김원용(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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