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곰방대 제작하는 황기조씨…오동상감기술·이론 체계화해 책 내고싶어
세월에 밀려서 사라져가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이 많다. 사라지는 옛것에 대한 향수를 물씬 풍기게 하는 한가위 날 남원시 노암동 전수회관에서 곰방대 전승자 황기조씨(47)를 만났다.
"먹고 살기 힘들지만 대를 이어 내려오는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나라 전통공예 맥을 잇고 있는 황씨는 그날도 오동상감기법 등 전통기법으로 담뱃대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외골의 삶이 진하게 느껴지는 그에게 우리 조상들의 삶의 체취와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옛날 시골 할아버지들은 잘게 부순 담배를 곰방대에 꾹꾹 눌러 담아 불을 붙였다. 화롯전에 긴 곰방대를 '톡톡' 털어 잎담배를 피워 물고 콧노래를 부르다가 어깨를 추스르곤 했다.
1610년 일본으로부터 처음 담배가 들어왔을 무렵, 기호품보다는 약으로 인식됐다. 「지봉유설」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가래가 없어지고 기(氣)가 내려가며, 술이 깬다.'고 기록했으며, 「인조실록」에서는 "가래를 치료하고 소화를 시킨다."고 기록돼 있다. 길고 화려하게 장식된 담뱃대는 양반이, 길이가 짧은 곰방대는 평민이 사용했다.
황기조씨 부친 황영보씨(77)는 1993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65호 백동연죽장 보유자다. 또한 조부도 담뱃대 만드는 일을 하셨고, 독립운동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으셨다. 아직 전수교육 조교인 그는 담뱃대 제작만큼은 매우 고지식하고 엄한 부친에게 배웠다. 좋은 기술을 가지는 방법은 '자주 만들어 보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라 했다.
"전에는 담뱃대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만들어 파는 것이 우선이었으나, 지금은 수요가 없어 하나를 만들어도 잘 만들어야 해요."
담배대의 재질은 백동, 금, 은, 동, 오죽(검은 대나무)를 주로 쓰는데 특히 망치질을 잘해야 한다. 문양판을 만드는데 처음에는 본을 대고 작업을 할 뿐, 그다음 공정부터는 감각에 의존한다. 그래서 똑같은 크기의 문양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곰방대 작업할 때 똑같은 자세를 오랫동안 취하고 있기 때문에, 관절에 무리가 온다고 했다. 또한 담뱃대의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담뱃대를 만드는 일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 박성분씨(47)는 "장인정신을 잇는 것은 좋지만, 아이들이 자꾸 커가는데 대학 등록금이 걱정이 된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제작기법을 잘 계승시켜 서민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곰방대 개발이 그의 목표. 백동연죽 제작과정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오동상감기술에 대한 경험과 이론을 체계화해 책에 싣고 싶다며 앞으로 정부의 지원이 좀 더 체계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나숙희 여성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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