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모(지방·기획취재팀장)
대한민국이 산업화를 향해 질주하던 1960년대엔 국가가 어떤 국책사업을 벌이기로 의사결정을 내리면 공무원으로 구성된 관료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밀어붙였고, 국민들도 거기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정책 결정은 잡음없이 곧 바로 정책 집행으로 이어지던, 공무원들에겐 그야말로 호시절이었다.
거의 무제한적인 권한을 휘둘렀던 관료제는 국가와 사회를 일사불란하게 한데 묶어 나갔고, 심지어 개인의 자유권이나 사유재산권을 침해해도 정당성에 별다른 흠결 사항이 아니었다. 당시 정부의 권한은 거의 모든 국민생활 영역에 간섭할 수 있다는 인식이 국민들의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1980년 후반부터 다원화 사회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얽힌 다원화 사회로 무게 중심이 옮겨지면서 국책사업마다 숱한 이해관계자들이 목소리를 높였고, 국가는 이들과 대립과 갈등, 더 나아가 충돌을 빚어 왔다.
이제 일방통행 식으로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시대는 갔다. 다원화와 함께 무소불위의 정치 권력은 점차 분산되었고,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관료제의 위상은 국민과 눈높이를 맞춰야 버틸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이다.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적 합의 수준을 높이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민주사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높이는 장치는 절차적 합리성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 이해관계자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며 절차적 합리성을 높이면, 사회적 합의는 비례적으로 상승한다는 논리이다.
당연히 과정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대척점에 선 이해관계자들이 쏟아내는 극단적인 발언은 서로 충돌하고, 심할 경우 파열음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원주의에서 이 같은 과정을 건너뛰거나 생략하면 훗날 더 큰 시련을 치르는 게 상례이다. 위천공단 지정이 그랬고, 경부고속철도 원효터널 사례가 그랬다. 가깝게는 2003년 부안 방폐장 사태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아직도 진행형인 상처를 던져주었다.
4대강 사업과 세종시 문제가 심상찮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정치권과 이해관계자들이 연일 포문을 열고 있다. 이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절차적 합리성이란 큰 맥과 맞닿아 있다. 절차적 합리성이란 관점에서 바라보면 당장 급하고 귀찮다고 과정을 슬쩍 넘어가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받는다.
이제 공공사업 부문에서 비밀주의 냄새가 나서는 안된다. 관계자 몇명이 머리 맞대로 입을 맞추며 사회를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최근 국책사업에선 구시대 관료제적 발상이 언뜻언뜻 느껴진다.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은 있는가. 환경영향평가는 부실하지 않은가.''세종시는 원안으로 추진해야 하나, 수정안이 옳은가.'정부는, 정치권은 숱한 소리에 명쾌하고 투명한 답변을 내놓든지, 아니면 이제라도 되돌아 가는 것이 사회적 아픔과 비용을 가장 줄일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절차적 합리성을 결여한 정책 결정은 집행단계에서 대립과 충돌만을 낳고,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다시 되새겨 볼 때이다.
/김경모(지방·기획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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