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얼마전 전주에 가려고 오랜만에 차를 몰아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경부 고속도로에서는 길이 막히다가 천안을 넘어서니 제 속도를 낼 수가 있어서 110Km로 주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추월선에서 앞차를 따라가던 차가 깜빡이도 켜지 않고 불쑥 끼어들었다. 깜짝 놀라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보니 젊은 사람이 몰고 있는 BMW 신형차량이었다. 그 차는 또다시 아무 신호도 없이 추월선으로 파고들어 원래 자기 앞에 가던 차를 앞지르고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마치 감히 좋지도 않은 차가 내 앞을 막고 있느냐는 투였다.
필자가 보기에 신호를 하지 않고 끼어들거나 과속을 하는 차들은 대부분 외제차나 대형차들이다. 많은 차들이 남들이 자기 앞에서 가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빵빵 클랙슨을 울리는가 하면, 번쩍번쩍 경고등을 울려대거나, 그 차를 앞지르기 위해 곡예운전을 하기도 한다. 유리창을 내리고 욕을 하기도 하고 손가락질을 하고 쏜살같이 달아나는 사람조차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보면 앞지른 사람들도 식사를 하거나 용변을 보거나 차를 마시다가 마주치게 된다. 얼마나 계면쩍고 무안할 것인가... 좋은 차를 탄 사람도, 나이 젊고 운전 잘하는 사람도 멀리 가지 못한다. 비슷한 때에 출발을 하면 같이 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모두 동행자요, 동반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조금 먼저 가려고 얼굴 붉힐 것은 없다.
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도 자동차가 급속히 보급되어 편리한 문화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전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필자가 태어난 고창군 무장까지 가려면 6~7시간 걸렸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서울 사람들이 골프 치러 고창에 가는 게 흔한 일이 될 정도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자동차가 증가되는 만큼 자동차 이용문화가 발전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에 코넬대가 있는 이타카에서 뉴욕을 가야할 일이 있어서 미국자동차협회(AAA)에 의뢰하였더니 상세한 지도와 도시 안내서를 받게되어 큰 도움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자동차 문화가 확산되는데 크게 기여한 AAA 안내서의 최종 결론이 '뉴욕에서 운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전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다. (Best way to drive in N.Y. is not to drive) 과연 전북의 도시들에게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인지..... 천년 고도라 워낙 비좁아서 그런지 전주에서 운전할 때마다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한 국가나 한 지역의 발전수준은 법과 규칙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된다. 한동안 전북에서는 불법분규 없는 지역을 표방하면서 기업들을 유치하려 노력하였다. 노사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규칙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은 운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북지역이 룰을 잘 지켜 안전하고 살기좋다면 관광객뿐 아니라 기업 유치도 많아질 것이다.
최소한 우리 고향에서는 깜빡이라도 잘 켰으면 좋겠다. 신호를 잘 보내고, 신호를 잘 지키면 좋겠다. 그것이 사고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작은 예의이기도 하기 때문에….
/김성중(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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