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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임진왜란을 예견한 율곡 - 강병원

강병원(전 전북도지 집필위원)

 

지금으로부터 405년 전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율곡 이이는 당시 조선의 이름난 대학자로서 호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낸 정상의 명인이었다.

 

또한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외적의 침략을 예견하고 국방강화책을 주장하였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임진강 나루터에 마흔을 좀 넘은 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는 주야로 글만 읽고, 자기가 거처하는 정자 기둥과 집 둘레에 자라고 있는 나무에다 '기름칠'을 자주 하는 습관이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 주인 선비는 병석에 눕게 되었으며 회생의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맏아들을 불러드렸다. 선비는 "이제 오래지 않아 저승길에 오를 것이니 어찌 통분하지 않겠느냐" 아버지는 곁에 놓인 문갑을 아들 앞으로 밀어 놓으며 말을 이었다.

 

"이 문갑을 간직하여라. 함부로 열지는 말고, 나라에 어떤 위급한 변란이 생겼을 때 열어 보아라." 하시고 눈을 감았다. 그 후 약 8년이 지났다.

 

선비의 예언대로 임진년 1592년 4월 12일에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다음, 순식간에 부산진을 함락시키고 한양으로 진격하였으며, 조선 팔도는 수일 내에 전쟁터로 휩싸이게 되었다.

 

그 환란 속에서도 조정은 동인파나 서인파로 나뉘어 서로 다른 주장을 들고 나왔다. 조정에서는 옥신각신하여 미쳐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왜적의 공략을 받은 것이다. 백성들은 부패하고 무능한 조정을 통탄하면서 도처에서는 의병을 조직하여 자발적인 항전을 했으나 힘과 무기로는 당해낼 수 없는 판국이 되었었다. 4월 말에는 한양이 순식간에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는 항전파와 후퇴파의 주장은 있었으나 결단을 내리지는 못하였다. 선조는 야밤에 북녘 땅 의주로 피신을 하게 되는데, 한양을 빠져 나온 선조와 그의 일행은 그 날 밤 늦게서야 임진강 기슭에 다달았다. 그믐밤이라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캄캄하여 방향을 잃고 온 산을 헤매게 되었다. 이제 물에 빠져 죽느냐, 차라리 싸우다가 죽느냐의 기로에 처하게 되었는데, 별안간 밝은 불기둥이 칠흙같은 야밤을 삼키듯 솟아오르며 나룻배는 물론 저 건너 언덕까지도 환하게 비춰 주었다. 선조 일행은 느닷없이 솟아오른 불길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강을 건넜다.

 

한 젊은이는 문득 부친께서 돌아가시면서, 나라에 변란이 생겼을 때 …… 라고 한 유언이 떠올라 문갑을 열고, 한 장의 종이를 내어보니 - "정자에 불을 질러라" - 순간 그는 가슴이 찡하였다. '옳다. 아버님의 유언이 성취되는구나.'

 

젊은 주인은 급히 서둘러 정자에 불을 질렀고, 기름을 먹은 정자는 활활 타올라 둘레를 밝힘으로써 선조 임금 일행을 구원하였다. 율곡의 천부적 영감은 영원한 금자탑을 이룬 것이다.

 

/강병원(전 전북도지 집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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