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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의 명창이야기] ⑮떡목으로 명창이 된 정정렬(2)

30년 앞 내다본 정정렬 소리…지금 들어도 옛 것 같지 않아

정정렬 추모비 / 익산시 솜리문화예술회관 (desk@jjan.kr)

정정렬은 저음부에서는 강하고 무거운 소리를 냈지만, 고음은 영 내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좀 높은 소리를 낼라치면 목소리가 갈라지고, 중간에 뚝뚝 끊기고 하여 엉망이 된다. 그래서 정정렬의 목을 판소리에서 가장 안 좋은 목으로 치는 '떡목'이라고 한다. 그런 목소리로 정정렬은 당대 최고의 소리꾼이 되었다. 판소리 아니면 이런 사람은 큰 소리꾼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판소리에서는 고음을 못내더라도 명창이 될 수 있다. 고음으로 내야 할 곳을 내지 못해도 듣는 사람이 그냥 그곳에 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들어준다. 마치 한국화에서 아무 색깔도 칠하지 않고 비워둔 곳을 안개나 구름이 끼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정렬은 여러 가지 소리를 잘 했지만, 특히 <춘향가> 에 관한 한 "판을 막아버렸다"고 할 만큼 최고의 소리꾼이었다. 이제 이보다 더 좋은 <춘향가> 는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해 버릴 정도로 좋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정렬이 중심이 되어 빅터레코드사에서 녹음한 <춘향가> 는 판소리사상 최고의 명반으로 꼽힌다.

 

정정렬은 30년 앞을 내다보고 소리를 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정정렬의 소리는 지금 들어도 옛 것 같지가 않다. 정정렬 이후의 판소리는 정정렬을 따라왔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지금 <춘향가> 는 거의 다 정정렬의 <춘향가> 에 기초를 두고 있다. 김소희, 박동진, 김연수 등이 <정정렬 바디 춘향가> 를 기본으로 삼고 있으니, 가히 현대 <춘향가> 는 정정렬의 <춘향가> 가 잡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정정렬은 조선성악연구회 결성 초기부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1934년부터 1938년까지의 상황을 보면, 이사장은 1937년 김창룡이 1년 동안 맡은 것 외에는 모두 이동백이 맡고 있다. 그런데 실제 일꾼이라고 할 수 있는 상무이사는 정정렬이 1934년부터 1937년까지 맡고 있다. 정정렬이 1938년에 별세했으므로, 죽기 직전까지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상무이사의 중책을 맡아 활동을 한 것이다.

 

조선성악연구회에서는 1934년부터 여러 가지 공연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정정렬은 주로 연출과 작곡을 도맡아 했다. 각색은 김용승이 주로 했다. 창극을 담당하는 창극좌의 대표는 김연수가 맡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창극다운 창극은 김용승과 정정렬, 김연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때 창극으로 만든 것은 전통 다섯 바탕뿐만이 아니라, <배비장전> , <숙영낭자전> 등도 있었다. 특히 <숙영낭자전> 은 정정렬이 작곡한 것이 박록주, 박송희를 를 거쳐 전승이 되고 있다. 정정렬이 주로 연출을 맡았던 것을 보면, 정정렬은 구태의연한 소리꾼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가 구태의연한 소리꾼이었다면 판소리를 연극으로 만든 창극에서 연출을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때의 창극은 과거의 창극과 어떻게 달랐는가? 과거의 창극이 그저 여러 명이 무대에 나와 혼자서 불렀던 판소리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부른 정도에 그쳤다면, 이 때의 판소리는 확실하게 연극으로 바꾸어 연출을 하고, 연기도 하면서 불렀다고 한다. 그러니까 창과 대사를 나누고, 배역을 나누어 연기를 했다는 것이다. 또 과거의 창극은 하루에 다 부르는 것이 아니고, 며칠씩 이어서 공연을 했는데, 이때부터는 완성된 작품의 개념을 도입 하루 저녁에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하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무대장치 등에도 신경을 써서 효과를 높였는데, 당시 무대장치, 의상, 소도구 등은 호화로움으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창극은 전성시대를 맞이하는데, 이런 흐름을 주도한 사람이 정정렬이다.

 

정정렬은 현대 <춘향전> 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창극의 아버지라고도 할 만한 사람이다.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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