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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정치인은 '쓰레기'인가?

(37)<진 립먼-블루먼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05>

아마존닷컴을 검색해보면 1944년에서 2003년 사이에 히틀러에 관해 쓴 책이 자그만치 2067권이나 된다. 1년에 평균 35권 이상 출간되는 셈이다. 이건 무얼 말하는가? 미국의 리더십 전문가 진 립먼-블루먼(Jean Lipman-Blumen)이 쓴 「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05)은 이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전통적으로 볼 때 리더십을 다루는 많은 책들이 신봉자보다는 리더들에게 초점을 맞춰왔다. 그 책들은 리더들을 일그러진 렌즈로 보면서 그들의 힘을 강조하는 한편, 그들의 실패는 최소화한다. 이런 식으로 리더들을 설명하다 보니 카리스마와 관계있는 리더의 자질은 너무나 미화되어 눈이 부실 정도이고 그들의 이미지도 한껏 부풀어져 헤라클레스에 버금갈 정도이다."

 

저자는 주로 '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을 다루고 있지만, 그 반대편도 이야기하는 게 공정하지 않을까? 왜 저자가 미국에선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에 관한 책이 1만6000권이나 나와 있다는 건 말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링컨이 훌륭한 인물이라 해도 그렇지,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말을 해보자면 그렇다는 것일 뿐, 뭐 그렇게 시비를 걸 일은 아닌 것 같다. 리더에 목숨 걸지 말자는 저자의 메시지엔 흔쾌히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에 엄청난 기대를 걸었다가 좌절과 환멸을 맛본 뒤 모든 잘못된 일의 책임을 리더에게 떠넘기는 일은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 아닌가. 거의 모든 나라의 유권자들이 다 그렇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마지막 메시지엔 박수를 보내줘도 무방할 것 같다.

 

"나 자신과 이 세상의 복잡성을 다 이해하고 나면 건설적이고 타자지향적인 리더십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끝없는 불안과 오만한 경쟁심, 만족을 모르는 야욕(野慾), 자존심을 향한 끝없는 욕구, 유해한 성취 도덕률, 영웅적인 자질에 대한 헛된 유혹 등에 덜 휘둘림에 따라 마침내 우리는 자신의 자율을 강력히 옹호하며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다. 그러면 자율과 자유를 통하여, 우리는 단순히 치명적이고 부도덕한 리더의 매혹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결단코 거듭해서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좋은 말씀이다. 그러나 이런 뻔한 말보다는, 좀더 참신하거나 도발적인 주장에 눈이 가는 걸 어쩔 수 없다. 두 개만 지적해보자. 첫째, '선택받은 느낌'에 관한 것이다.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과 경쟁, 독선과 오만, 비굴과 굴종의 이면엔 이게 있는 게 아닐까? 합리적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이 개념을 이해하면 쉽게 풀린다. 우선 저자의 주장부터 들어보자.

 

"역사적으로 볼 때 칼뱅주의자들의 운명예정설, 이를테면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이미 신의 은총 아니면 영원한 저주를 받도록 선택되어 있다는 관념은 하나의 막강한 힘이었다. 희망을 잃고 불확실성의 세계에 살던 중산층들은 운명예정설로 새로운 방향 감각을 얻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종교개혁에 나선 칼뱅주의자들만이 선택되었다는 느낌에서 힘을 이끌어낸 유일한 무리는 아니었다. 사실 선택된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개념은, 그 집단의 성격과는 관계없이, 첨단 기술의 시대인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인간에게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왜 그렇게 특정집단에 대한 반감이 강할까? 왜 그렇게 고위 공직을 탐하는 걸까? 왜 그렇게 특정 학교에 들어가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걸까? 왜 그렇게 편가르기에 몰두해 반대편을 미워하고 경멸하는 걸까? 다 그 나름의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선택받은 집단에 소속돼 있다는 느낌이 아닐까? 그 느낌 하나만으로 배가 부르고, 자존심이 충족되고, 우월감을 만끽하고, 더 나아가 못된 짓도 서슴 없이 저지를 수 있는 게 아닐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건 인류 역사가 수없이 입증해온 명백한 사실이니까 말이다.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전부는 아닐망정 상당 부분은 그런 '편 가르기의 게임'이다. 특정집단에 대한 지지자들의 증오를 자신에 대한 열광으로 바꾸는 '적(敵) 만들기의 게임'이다. 물론 그 게임은 화려한 이념이나 명분의 포장을 뒤집어 쓰기 마련이지만, 그 본질이 그렇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택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은 그 어느 곳이건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 부패를 지적하면 그 집단의 사람들은 "시기와 질투로 배가 아파서 그런다"느니 "열등감이나 콤플렉스 때문에 그런다"고 받아친다. 실은 그게 부패를 입증하는 증거다. 그 이치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선택받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중심에 선다는 특별한 권한을 보호하고 유지해나가려면 온갖 종류의 고통을 다 참고 견뎌야 할 때가 종종 있다. 선택된 사람들 또한 그런 지위가 자신을 독특한 존재로 만들 뿐 아니라 자신을 성스러운 중심에 있게 해준다는 믿음에서 매우 강한 아집과 결단력을 이끌어낸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선택받은 사람들이 그 특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 중심에는 종종 못 보고 넘어가는 위험이 하나 존재하고 있다.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를 때가 간혹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배타적인 성향이 있어서 특권 계층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조언이나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리더십의 속성에 관한 문제다. 저자는 "공식석상에 자주 나타나는 리더들 틈에서는 성자를 찾으려 들지 마라. 성자들이 선거직이나 임명직을 좇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사람들은 정계나 기업 세계 같은 아수라장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 법이다."고 말한다. 여기에 '공적 결정'을 해야 하는 직업의 속성이 더해진다. 저자가 인용한, 하버드대 제임스 C. 톰슨 교수의 '인간 에고 봉쇄(human ego investment)'라는 개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어떤 결정에 참여한 사람은 그 결정에서 이해관계를 만들어낸다. 그 뒤로도 그 사람이 그것과 관계된 결정에 더 깊이 개입하게 되면 그들의 이해관계 또한 점점 더 커져간다. 그런 결정이 거치게 되는 여러 단계 중에서 비교적 초기 단계에 놓여 있을 때에는 그 사람에게 강한 자신감을 거둬들이라고 설득하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단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설득 작업은 더욱더 불가능해진다. 왜냐하면 거기서 마음을 바꿀 경우에는 그 전에 있었던 일련의 결정을 부인한다는 뜻이 은연중에 담기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주장을 냉소로 받아 들이면 실수하는 거다. 진실이요 진리다. 정치인을 욕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옹호론이다. 정치인은 '쓰레기'가 아니다. 정치가 '쓰레기장'의 속성을 갖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 저주'에 대해 정치인들은 책임을 통감해야겠지만, 국민과 언론도 공범으로 가담하고 있다는 데 대한 집단적 성찰이 있어야 한다. 새해에는 모든 유권자들이 자율적인 홀로서기를 하는 동시에 리더와 정치인보다는 리더십과 정치 자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면 좋겠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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