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선대인 지음, 더난출판사, 2009> 당신도 '부동산 이중인격자' 인가요
"2000년대 들어 잔뜩 부풀어 오른 부동산 버블을 키우는 과정에서 가계 부채가 830조원까지 늘어났는데, 이 가운데 315조원이 부동산 담보 대출이다. (…) 시중 금융기관들은 CD와 은행채를 남발하고, 단기 외화까지 무차별 차입해 부동산 시장에 펌프질을 해댔다. (…) 이런 상황에서 현 정권은 부동산 버블을 떠받치는 데 '올인'했다. 현 정권은 각종 주택 및 부동산 관련 공약을 통해 사실상 '집값을 올려주겠다'고 공약해 집권한 정권이다. 현 정권의 핵심 집권 기반은 불과 5%도 안되는 다주택 투기자 등 부동산 부자 그룹이다. 따라서 현 정부에게 부동산 버블 붕괴는 경제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동아일보와 미디어다음 기자 출신인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의 「위험한 경제학 : 서민들은 모르는 대한민국 경제의 비밀」(더난출판, 2009)은 위와 같은 진단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는 2008년 출간한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에 이어 이 책에서 다시금 부동산 대폭락을 경고한다. 집값이 반등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부동산 버블 붕괴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지막 폭탄 돌리기'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이미 부동산 시장의 대세 하락이 시작됐으며 지금 뛰어내리지 않으면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며 '주택 실수요자를 위한 10가지 조언'을 제시한다.
첫째,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 묵힐 경우의 기회비용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집값이 올라줄 것인지, 기대대로 집값이 올라주지 않을 경우 가계 경제에 생길 리스크를 생각하라. 둘째, "우리 동네는 저평가돼 있다"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라. 셋째, 나도 부동산으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 넷째, 재테크 수단으로 부동산만 한 것이 없다는 환상을 깨라. 다섯째, 집값이 바닥에 근접했다고 보고 가볍게 움직였다가는 장기간 지속되는 바닥권에 갇힐 수도 있다는 것에 유의하라. 여섯째, 주택시장에선 주식시장처럼 단기적으로 치고 빠질 수 없다는 걸 잊지말라. 일곱째, 집값의 20% 이상은 빚을 내 사지 말라. 여덟째, 집값 촉진책에 속지 말라. 아홉째, 실거주 수요가 없는 지역은 피하라. 열째, 20~40대 젊은 세대라면 서두를 필요 없다.
저자는 "언론과 건설업계, 부동산 정보업체, 정부 관료들의 검은 유착이 부동산 거품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며 "지금 한국의 언론들, 특히 일부 기득권 신문들은 광고 유치와 사주의 이익 수호에 눈이 멀어 언론의 본령을 저버리고 지면을 사유화한 거대 이익집단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그가 제시한 '부동산 선동 기사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15계명'은 다음과 같다.
①기사에 나온 현장과 그 주변 상황이 맞는지 직접 확인해보라, ②해당 기자가 그동안 쓴 기사 이력을 검색해보라, ③신문사의 이해관계를 생각해보라, ④취재원의 이해관계도 살펴보라, ⑤기사가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생각해보라, ⑥통계에 속지 말라, ⑦기사내용이 확정된 결과인지 살펴보라, ⑧기자의 주관적 생각이 개입된 기사들을 조심하라, ⑨마지막 문장을 조심하라, ⑩제목과 기사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다시 생각해보라, ⑪가능하다면 같은 주제를 다룬 외신 기사와 비교해보라, ⑫개발호재로 집값 상승 점치는 기사를 조심하라, ⑬단기 국면만 보여주는 기사는 경계하라, ⑭일부 사례를 일반적 사례로 포장하지 않는지 조심하라, ⑮언론에서 쓰는 상투적 용어가 적절한지 생각해보라.
그러나 이런 합리적 논리에 저항하는 속설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부동산에 대한 집착이 강하므로 집값이 쉽게 안 떨어진다"거나 "부동산은 심리다. 조금만 심리가 꿈틀하면 금장 집값이 오른다"는 따위의 속설이다. 이런 속설에 감염되면 논리적으론 수긍하던 사람들도 돌아서면 "집값은 또 오를지도 몰라"라며 불안해 한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부동산 이중인격자'라고 부르면서 부동산 이해관계자들의 선동에 놀아나지 말 것을 충고한다. 저자는 "현재 한국에서는 치열한 부동산 계급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이제라도 한국경제의 파탄을 피하면서도 부동산 버블을 빼고 우리 모두가 집단 바보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간의 계급투쟁을 마무리 짓고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능력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공정한 게임 규칙에 따라 정당하게 보상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저자는 이명박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매우 비판적이지만, 그렇다고 현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정치세력에게서도 희망을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득권 중심의 불공정한 게임 규칙이 적용되는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게 가장 의미심장하거니와 안타까운 일이다. 현 정권과 분명히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민주당은 부동산 기득권 세력에 가깝다는 게 저자의 생각인 것 같다. 반면 진보정당들은 주요 의제설정에서 부동산 문제와 멀어졌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저자의 답답한 심정엔 공감하면서도 과연 '새로운 정치세력'의 구축이 가능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 책의 내용은 지방, 그것도 못 사는 지역의 현실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저자의 '부동산 이중인격자'라는 말은 가슴에 와 닿는다. 이 개념을 원용하자면, 지방에 사는 우리 모두가 지방문제에 관한 한 알게 모르게 이중인격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입시 철이니 이런 이야길 한번 해보자
지방에 살면서도 자녀를 서울 소재 대학으로 진학시키려고 애쓰는 건 당연하다. 아니 정말 잘 하는 일이라고 격려를 보내줘도 좋으리라. 개인과 가족의 발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지역공동체가 우선이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은 존경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일반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여럿 모인 자리에서까지 지역대학을 모욕할 필요는 없다. 설사 "지역대학 보내느니 아예 대학 안 보낸다"는 마음이 있더라도 그건 속마음으로만 간직할 일이고 그와 비슷한 생각을 남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발설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의 친구들이 다 성공해서 서울 강남의 수십억원짜리 아파트에 산다고 가정해보자. 그곳에 사는 어떤 친구들이 당신의 무능을 비웃더라도 속으로만 그렇게 한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당신이 지방에 사는 걸 공개적으로 비웃는다면 이야긴 달라진다. 지역대학 문제도 마찬가지다. 속으론 마음껏 폄하하시되 발설하지 마시라. 당신이나 지역대학이나 같은 처지인 바, 누워서 침뱉는 일이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자기모멸을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닌지 늘 조심하자는 뜻이다.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저자는 "부동산은 심리다"는 말을 반박했지만, 그건 '마지막 폭탄 돌리기'를 경고하는 차원에서 심리적 요인에 의해 사회적 문제가 증폭되는 걸 지적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무슨 일에서건 과대평가나 과소평가 모두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가장 피해야 할 것중의 하나는 서울에 대한 과대평가와 지방에 대한 과소평가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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