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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신(神)이 놓고 간 '물음' 하나만으로도 - 허소라

허소라(시인, 군산대 명예교수)

여기서 '신'이란 굳이 특정 종교로 한정하지 말고, 그 주체를 '자연'이라 해도 무방하다. 거슬러보면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엄위한 절대 앞에 무릎을 꿇는데 익숙해왔으며 그 절차 또한 지극정성이었다. 그것은 내 힘의 한계, 내 모자람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엄위한 그 자리에 사람들이 차지하기 시작했고, 구체적으로는 '나' 스스로가 골리앗 장군이 되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정작 스스로가 '큰 바위 얼굴'임에도 마냥 큰 바위 얼굴만 찾아다니던 시절에서 이제는 자신이 '큰 바위 얼굴'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60년대 초, 최전방에서 S대학 재학 중에 학보병으로 입대한 최모 일병이 내무반에서 선임하사와 고참병을 사살한 사건이 일어나 전국이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사연인즉 홀어머니 밑에서 가정교사로 근근이 학비를 조달하던 최군이, 가르치고 있던 학생의 누나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입대한 이후에는 거의 사흘에 한통씩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 편지를 맨 처음 뜯어 읽는 사람은 당시의 선임하사였다.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았던 선임하사는 이 편지를 최일병에게 고분고분 전해주지 않았다. 어느 땐 야외 화장실아래에 휴지로 떨어져 있었는가 하면 아침 소대원 점호 시 교태스런 목소리로 크게 낭독하여 전 소대원으로 하여금 킬킬대게 하는 모욕도 당했다. 그러던 중 그해 크리스마스이브 때 대학에 재학 중이던 최일병의 연인이 전방으로 면회를 왔다. 가까스로 하루의 외박을 허락받은 최일병은 산 아래 민가의 처마 밑에서 밤새도록 정담을 나누다 다음날 아침에 서둘러 귀대를 하였다. 그런데 이 때 선임하사가 여러 소대원 앞에서 강제로 웃통을 벗게 하였다. 애인의 손톱자국이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이 순간 수없이 참기만 해온 최일병이 그만 이성을 잃고 만 것이다.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쌓아올린 이 고귀한 사랑을 목숨으로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내무반으로 달려간 최일병은 M.1 소총을 꺼내어 서임하사와 틈만 나면 자신을 괴롭혔다고 생각되는 고참병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이후 최일병은 사형만은 면케 해 달라는 각계각층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이 캄캄한 무덤 속에서 나를 잠들게 하라"는 옥중수기를 남긴 채 저세상으로 갔다.

 

그런데 엊그제 보도를 보니 아파트 지하에서 단순히 쳐다보았다는 이유만으로 공기총으로 사람을 죽게 하였다. 같은 살인사건이지만 그 본말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금 이 시대의 가장 큰 고뇌는 쌀이 없어서도 아니고, 물이 없어서도 아니다. 옛날에 비해 물질적으로 얼마나 부유하고 편리한 세상인가? 그럼에도 사회는 전방위적으로 일촉즉발이다. 마치 대회전의 전야와 같다. 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자. 물은 저 홀로 흐르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의 몸을 받아들이면서 함께 흐른다. 바야흐로 문화적 체르노빌에 직면한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지체없이 '나'를 귀향시키는 일이다. 인간생명의 본향으로 나를 달래며 돌아오는 일이다.

 

신(神)이 놓고 간 '물음' 하나만 가지고도 평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그런 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

 

/허소라(시인, 군산대 명예교수)

 

▲ 허소라 교수는

 

시인이며 1959년 '자유문학'지를 통해 문단 데뷔했다. 제28대 한국기독교문인협회장을 거쳐 현재 '전북문학연구원'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황주연기자test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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