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이주여성 70여명 대부분 서비스업 종사…삶·인권문제 심각
필리핀에서 온 애나(32·가명)는 본국에 아들을 두고 있는 '싱글맘'이다. 2008년 8월 E6 비자(공연예술비자)로 한국에 들어 온 애나는 지금 군산 국제문화마을(아메리카타운)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가 비자 만료기간이었지만 1년 연장을 해 올해 8월까지는 체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연장 기간이 만료되면 그는 아들에게 돌아갈 생각이다. "다시 한국에 올 생각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 애나는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해 계약할 때부터 알고 왔다. 미군들과 2차(성매매)는 한 번도 안했다. 요구도 안하고 하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노래할 수 있다고 해서 왔고,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취재진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군산 국제문화마을에서 만났던 거의 모든 여성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군산시 산북동 국제문화마을. 이곳에는 애나와 같은 필리핀 여성 70여명이 10여개의 외국인 전용 클럽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곳은 금요일 밤, 가장 활기를 띤다.
5일 오후 7시께 군산 미군기지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국제문화마을 앞에 도착하자 30여명의 미군들이 쏟아져 내려와 식당 등으로 향했다. 셔틀버스는 2대 운영되는데, 새벽 1시45분 국제문화마을에서 미군부대로 출발하는 차편이 막차다. 일부 미군들은 콜택시 등을 타고 도착했다.
국제문화마을의 핵심인 외국인 전용 클럽은 화려하기보다는 초라해 보였다. 폭 5~6m가량의 길지 않은 골목길 양쪽에 단층 건물이 늘어서 있고 이 곳에 10여개의 클럽이 운영되고 있다. 클럽 내부에는 필리핀 여성들이 적게는 1~2명, 많게는 10여명 가까이 포켓볼을 치거나 잡담을 나누며 미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8시를 넘겨 클럽에 미군들이 들어왔다. 업소마다 다르지만 테이블 주변에 둘러앉거나, 스탠딩 바 형태로 운영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총을 찬 미 헌병들이 3명씩 조를 짜 업소에 들어왔다. 이곳은 미군의 자국민 보호구역. 무장한 헌병들이 감독 관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헌병들은 이후로도 10여분이 멀다하고 업소에 들락거렸다.
이 곳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들은 한결같이 '성매매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월급은 95만4000원. 인센티브로 지급되는 돈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이 여성들의 계약서를 미리 확인해 본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입국 때 월급 93만5000원에 계약을 맺고 이 중 23만원은 필리핀 현지 연예기획사로, 20만원은 국내 연예기획사로 지급된다. 여성이 속한 클럽이 한국 연예기획사에 월급을 보내면 이 기획사가 여성에게 돈을 주는 구조다. 기획사 상황에 따라 임금 체불 등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최근 '기지촌'에서 일하는 필리핀 이주여성들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수가 되는 줄 알고 한국에 왔지만 실상은 '기지촌'에서 성산업에 이용되는 여성들이 많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내에서도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가 지난해 국제문화마을의 실태조사를 벌여 이주여성들의 인권상담과 의료지원 등을 위한 쉼터가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이 곳에서 생활하는 킴벌리(27·가명)는 "한 달에 4일 쉬는데 주로 잠을 자고 군산시내에도 나가지만 버스 타는 법은 몰라 택시를 타는데 부담이 된다"며 "돈은 버는 대로 집에 보내고 올해 10월말 계약이 끝나는데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 다시 올까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이주여성들은 필리핀 현지 연예기획사에서 오디션을 보고, 한국측 기획사가 이 자료를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제출해 비자가 발급돼 입국한다. 그러나 이 곳에서 생활하는 이주여성들은 거의 노래를 부르지 않고 대부분 서비스 업종에서 종사한다.
이주여성의 삶과 인권 문제가 지역사회의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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