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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의 명창이야기] (20)근대 문물이 만든 명창 임발울(3)-추억

임방울·산호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슬퍼하는 내용

내가 처음 판소리를 배울 무렵이었다. 나의 선생님이었던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홍정택은 임방울과 함께 젊은 시절 공연을 다니기도 했고, 또 직접 소리를 배우기도 해서 임방울의 흉내를 아주 잘 냈다. 소리도 잘해서 별명이 '홍방울'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한 번은 <추억> 이라는 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추억> 은 임방울을 좋아했던 요리집 주인 김산호주를 위해서 임방울이 직접 만든 곡이라고 했다. <추억> 은 길이는 보통의 단가와 비슷하지만, 앞부분은 진양조로 뒷부분은 중모리로 되어 있다. 내용도 보통의 단가와는 달리,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한데, 혼은 어디로 행하신가? 황천이 어디라고 그리 쉽게 가렸든가? 그리 쉽게 가렸거든 당초에 나오지를 말았거나. (…)"라는 가사만 보아도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김산호주와 임방울에 얽힌 일화를 보자. 소설가 문순태에 의하면, 임방울이 서울에 올라가서 크게 성공한 6년 뒤(문순태는 1936년이라고 했으나, 데뷔 후 6년 뒤는 1935년임) 광주에서 공연을 하고서는 송학원이라는 요리집에서 잔치를 벌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송학원 주인이었던 김산호주가 임방울을 따로 불러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임방울은 김산호주에게 빠져 그날부터 꼬박 2년 동안을 송학원의 내실에서 김산호주와 함께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임방울은 정신을 차리고 말 한 마디 없이 지리산으로 들어가버렸다. 버린 목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임방울이 송학원을 떠나버리자, 김산호주는 시름시름 앓아 자리에 눕고 말았다. 수소문 끝에 지리산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아픈 몸을 이끌고 그리운 임방울을 만나러 가보았으나, 임방울은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이야기는 두 갈래로 엇갈린다. 어떤 사람은 죽게 된 김산호주를 데리고 임방울이 소리 공부를 하고 있는 토굴까지 찾아갔더니, 임방울이 나와 김산호주를 붙들고 울면서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불렀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김산호주가 죽은 뒤에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임방울이 김산호주의 장례식에 와서 노래를 불렀다고도 한다. 그 노래가 바로 <추억>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김산호주와의 관계는 사실일까? <추억> 첫 음반은 단가 <편시춘> 과 함께 같은 음반에 녹음되어 1932년 10월에 콜럼비아에서 발매되었다(Columbia 40370). 임방울의 나이 스물여덟 살 때이며, 데뷔해서 첫 음반이 발매된 지 2년만이다. 아마도 콜럼비아의 두 번째 녹음 때 녹음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이 때 이미 임방울은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출세한 소리꾼 임방울과 젊은 미인의 로맨스가 이루어질 수 있는 때이기는 했다. 그러나 문순태가 얘기하는 시점과는 관련이 없다.

 

제목도 <추억> 한 가지로만 되었던 것은 아니다. <추억> 은 1932년 10월 콜럼비아에서 처음 발매한 이후, 1934년 1월 시에론에서 <사망처(죽은 아내를 생각함)> (Chieron 151)라는 이름으로 발매하였으며, 1934년 2월에는 오케에서 <추억> (Okeh 1637)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다시 1940년 9월에 '망처를 생각하며'라는 부제를 붙여 발매한 것으로 확인된다. 1934년 2월 오케에서 발매한 <추억> 에는 "작사 임방울"이라고 한 표기가 있다. 그렇지만 이와 비슷한 <사망친난 단가> 라는 노래 가사가 발견된 바 있다. '사망친난'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애매모호하기는 하다. 그러나 혹 '사망처라는'이란 뜻일지도 모르겠다. 내용으로 보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인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추억> 또한 임방울의 순수한 창작은 아니다.

 

그렇다면 임방울과 관련된 일화는 사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임방울과 관련된 일화는 사실이 아니면서도 사실보다 더 진실하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임방울이 너무나 훌륭한 명창이어서 설화의 영역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성계나 사명대사나 임경업이 숱한 설화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최동현(군산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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