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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책으로 읽는 세상] 굿바이 니코틴홀릭

(45)<김관욱 지음, 북카라반, 2010> 담배는 마약이다

김관욱의 「굿바이 니코틴홀릭 : 금연상담 전문의의 담배 이야기와 금연 멘토링」(북카라반, 2010)은 뜻밖의 책이다. 금연을 하라고 잔뜩 겁주는 책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이만저만 재미있는 게 아니다. 단지 재미 뿐인가. 그건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넛지(nudge)' 방식이라고나 할까. 넛지는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주의를 환기시키다'는 뜻이지만,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 책도 그런 식이다.

 

"우리는 무지 때문에 궁지에 몰리는 게 아니다. 문제는 잘못된 확신이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의 말이다. 가슴에 와 닿는다. 흡연자, 특히 골초들의 심리가 그렇다. 김관욱은 "대부분의 문제는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확실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데서 주로 발생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담배는 하나의 '기호품'이고, 흡연하는 생활양식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니코틴 의존도'(흡연에 대한 의식, 가치관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높은 흡연자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들에게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의학적 '진실'을 이야기하면 할수록 심신이 '불편'해지기만 한다. (중략) 백이면 백 탄 고기는 먹지 않고 버리곤 한다. 이유는? '암'에 걸리는 게 두려워서다. 탄 걸 먹으면 암에 걸린다는 믿음은 어디에나 통용된다. 그런데 폐암을 유발하는 담배는 왜 그렇게 열렬히 피우는 걸까?"

 

골초들이 담배에 대해 나름대로 갖고 있는 확신은 실은 '담배 마케팅'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이 책에 따르면, 하버드대 의학 교수 앨런 브랜트(Allan M. Brandt)는 「담배의 세기(The Cigarette Century)」에서 "담배는 선천적인 특성보다 판촉에 의해 의미가 정의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담배의 역사는 곧 '판촉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묘기대행진에 가까운 담배 판촉술 몇가지를 감상해보기로 하자.

 

1928년 미국 아메리칸토바코(American Tobacco)사 사장인 조지 워싱턴 힐(George Washington Hill)은 PR 전문가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L. Bernays)에게 "어떻게 하면 여자들이 길거리에서도 담배를 피우게 할 수 있을까?"라는 숙제를 던졌다. 그렇게만 되면 여성의 담배 소비량이 두 배로 늘 수 있다는 게 아메리칸토바코사의 생각이었다. 버네이스는 담배를 여성해방이라고 하는 '자유의 횃불'로 만들기로 했다.

 

1929년 3월 31일 부활절에 미국 뉴욕시 맨해튼 5번가에서는 아주 이색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10명의 젊은 여성이 담배를 피우며 거리를 활보했던 것이다. 늘 진기한 사건에 굶주려 있는 신문들은 이 행진을 보도하기 위해 1면을 아낌없이 할애했다. 버네이스는 이어 보스턴, 디트로이트, 휠링, 샌프란시스코 등에서도 '자유의 횃불' 퍼레이드를 연출했다. 이 사건 이후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반발은 점차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메리칸토바코사는 이어 '담배 피우는 산타클로스 캠페인'을 전개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산타가 담배를 선물로 주는 형식을 취해 담배의 선물화를 시도한 캠페인이다. 1936년 광고 속 카드에 쓰인 내용에 따르면, "나의 크리스마스 정신(선물 증정)은 곳곳에 퍼져 있다. 이러한 정신을 표현하고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선사해줄 선물은 크기에 상관없이 정말로 드물다. 나의 친구인 '럭키스트라이크'가 바로 그러한 선물이다."

 

담배의 마케팅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히트 광고는 1955년에 등장한 필립 모리스사의 말보로(Malboro) 광고다. 카우보이를 등장시킨 광고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에선 1954년부터 담배의 폐암 유발 가능성이 거론되었지만, 이 말보로 광고는 그런 우려를 이후 오랫동안 잠재우게 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오죽하면 2006년 10월 미국에서 꼽은 '가장 영향력 있는 허구인물 101명' 가운데 말보로맨이 1위에 올랐겠는가. 그러나 역대 10명의 말보로맨 가운데 한 명이었던 웨인 맥라렌(Wayne McLaren)은 1992년 51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죽으면서 "나는 흡연이 인명을 살상시킨다는 명백한 증거를 남기며 죽어간다"고 말했다.

 

간접광고 형식을 통한 할리우드와 담배의 유착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980년작 <슈퍼멘 2> 에는 말보로 광고가 배경으로 22번이나 등장하고, 슈퍼맨의 여자친구로 나오는 로이스 레인(마곳 키더 분)이 영화속에서 피웠던 담배 역시 말보로다.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Enzio Stallone)은 <람보> 와 <록키 4> 등 자신이 출연한 5편의 영화 속에서 브라운 앤 윌리암슨(Brown & Williamson) 담배를 피우기로 계약한 후 50만 달러(5억원 이상)를 받았다.

 

한국의 담배 마케팅의 전진 기지는 군대다. 1949년 '화랑'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약 60년 동안 군대에 담배가 보급되었다. '화랑' 이후 군용담배의 명맥은 '은하수'와 '한산도'(1982~1988), '백자'(1989~1990), '솔'(1990~1994), '88 라이트'(1994~2000), '디스'(2001~2008)로 이어졌다. 1994년 12월 한국담배인삼공사 지점장이 해병부대를 방문해 신제품 '디스'를 선물로 주면서 장병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동시에 장병들에게 '디스'의 홍보를 부탁했다는 게 흥미롭다.

 

국산품애용이라는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은근슬쩍 국산담배 판촉을 하는 건 오래된 수법이다. 「담배인삼가족」 1995년 1월호에 실린, 초등학생 국산품 애용 글짓기 대회 수상작을 보자. "우리 몸엔 우리 것이 최고! (…) 담배는 나라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인데 담배까지 수입한다니 큰 일이다. (…) 이렇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담배를 왜 사람들은 양담배를 피우는 것일까? 우리나라 담배를 사면 그만큼 나라가 잘사는데…."

 

이젠 오랫동안 '국가 종교'였던 '수출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KT&G의 인터넷 자사 광고에 따르면, "KT&G는 러시아, 중동, 중앙아시아, 미국, 중국, 동남아시아 등 40여개국에서 수출개시 7년만에 수출금액 25배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총 생산량의 약 40퍼센트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KT&G는 세계가 인정하는 초우량 글로벌기업의 위상을 확고히 해나가겠습니다."

 

이 책엔 담배에 얽힌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렇게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흡연자들의 '자기 확신'을 의심하게 만든 다음 마지막 장에서 '금연을 위한 생활백서'를 제시한다. 저자의 마지막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는다. "금연운동은 담배에 관한 의학적 측면은 물론 역사적·사회적·문화적·경제적 측면까지 깊이 있게 성찰할 때에만 비로소 인류를 더욱 행복한 길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보건의료인들도 담배회사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담배는 마약이다. 흡연자의 의지를 강조하는 금연운동으론 한계가 있다. 체질에 따라 중독의 정도도 다를 것인 바, 의지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어떤 의료인이 주장하고 나선 '담배 금지론'이 화제가 되고 있다. 담배는 마약이라는 그의 진단은 백번 옳다. 문제는 담배생산 농가를 비롯하여 담배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사전 대책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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