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못 들을 '쑥대머리'…사망시기·장소·죽음 원인 놓고 '설왕설래'
임방울은 1961년 3월에 별세하였다. 그런데 날짜는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다. 호적에는 1953년 4월 5일 오후 한 시에 송정읍 자택에서 사망하여, 1977년 4월 14일 호주가 신고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사망연도와 사망신고 연도에 많은 시간적 간격이 있어서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호적을 정리하면서 대충 써넣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믿을 만한 기록은 세 가지 정도 된다. 박황은 3월 10일 서울 중구 초동 자택에서 병사하였다고 하였으며, 천이두는 3월 8일이라고 하였다. 문순태는 3월 7일 밤이라고 했다. 동아일보 1961년 3월 10일자에는 <다시 못들을 "쑥대머리"― 명창 임방울씨 가다> 라는 임방울 사망기사가 실려 있는 바, "지난 7일 밤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다. 3월 10일자 기사에 사망 사실이 실려 있다면, 3월 10일 이전에 사망한 것이 분명하다. 동아일보 기사나 문순태의 글을 보면 임방울의 사망 시각은 밤 늦은 시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7일이라고도 하고, 8일이라고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가 임방울의 장녀 임오희 여사께 직접 확인해 본 결과, 3월 8일 새벽 두 시에 운명하였다고 하였다. 다시>
그런데 임방울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1961년 부산 공연 때 <옥중가> 를 부르다가 갑자기 <심청가> 로 바꾸어 부르더니, 이어서 <춘향가> , <심청가> , <수궁가> 등을 이것 저것 마구 바꾸어 부르다가 얼굴에 핏기가 가시면서, 무대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길로 서울 초동 집으로 옮겨졌으며, 끝내 일어나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임방울을 수종하던 명고수 주봉신은 1960년 음력 8월 16일 전북 김제에서 판소리의 강산홍, 가야금의 진태수, 줄타기의 김영철 등과 함께 공연에 참가했다가, 정신을 못 차리고 이 소리, 저 소리를 뒤섞어 부르는 것을 보고, 강산홍이 바삐 징을 쳐서 막을 내렸는데, 이미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고 했다. 놀란 사람들이 임방울을 급히 서울로 모셨지만 이미 때가 늦어, 다음해 3월에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이때 같이 공연에 참가했다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정미옥 또한 임방울이 김제에서 쓰러졌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임방울이 김제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그 길로 일어서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수궁가> 심청가> 춘향가> 심청가> 옥중가>
그런데 임방울이 이렇게 된 데는 일본 공연 후에 발생한 일련의 사태가 관련이 있다고 한다. 1959년 말인가 1960년 초에 임방울은 임춘행 일행과 함께 <견우직녀> 라는 작품을 가지고, 동경과 오사까에서 14일간의 공연을 했다. 박후성, 박종철 등도 함께 갔는데, 임방울은 도창으로 갔다고 한다. 일본 공연을 다녀온 직후 모처에서 임방울을 연행해 갔다. 임방울이 조사를 받은 것은 일본 공연시 조총련으로부터 자금을 받은 일 때문이었다고 한다. 주봉신은 임방울이 연행된 지 이틀만에 나왔지만, 고문을 당했는지 몸이 말이 아니어서 그때부터 공연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였던 정범태는 임방울이 일본 공연 중 조총련의 돈을 받은 것과 관련해 조사를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임방울이 조사를 받으면서 고문을 당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방울의 뇌졸중이 고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견우직녀>
임방울의 장례식은 5일장으로 3월 12일에 치러졌다. 국립국악원에서는 임방울의 장례식장 사용 요청을 거절하였다. 장례 행사는 국악예술인장으로 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관장하였으며, 상여는 왕십리 상여집에서 특별히 마련한 꽃상여였다고 한다. 소복을 입은 200여 명의 여류 명창들이 상여를 멨다. 상여는 스카라극장을 거쳐, 을지로·시청을 지나 조선일보사 앞에서 잠시 멈췄다. 생전에 임방울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방일영 사장에 대한 우의의 표시였다. 김소희, 박귀희, 박보아, 장영찬 등이 상두소리를 메겼다. 광화문을 돌아 국악예술학교에 들러 하직을 하고, 망우리 묘소에 안장하였다. 이렇게 임방울은 우리 곁을 떠나갔다.
/최동현(군산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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