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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전북 기업사] (12)전북고속①

90년동안 삶의 애환 싣고 달려 온 '도민의 발'

지난해 4월 1일 열린 전북고속 제89주년 창립기념식에서 서혁 대표이사가 기념사를 읽고 있다. (desk@jjan.kr)

2010년 2월말 현재 도내에는 68만 7,364대의 자동차가 등록돼 있다. 우리나라 전체 등록자동차 1,732만5,210대의 4%정도이다. 이 가운데 승용차는 48만 899대이고, 승합차는 4만 312대, 화물차는 16만 4,133대, 특수차는 2,02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적으로 수입차도 불티나게 팔리면서 도내 수입차 등록대수도 7,066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내 인구가 180만명선인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도내 대부분 가정에서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부 가정은 2-3대까지 운행하고 있으니 현대사회는 가히 자동차 천국이요, 자동차는 모든 사람들의 발이 됐다.

전라북도 자동차 역사는 (주)전북고속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는 4월1일 창립 90주년을 맞는 전북고속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 6.25전쟁 속에서, IMF 외환위기 속에서, 승용차의 폭발적 증가 속에서 언제나 모든 대중의 발이 돼 왔다.

지난 1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전북도민과 애환을 함께 해 온 전북고속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 자동차, 세상을 바꾸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발명, 기술적 진보 등을 거치며 완성된 자동차는 우마차에 의존하던 인간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빠른 속도와 엄청난 운송 물량은 자동차 산업 자체를 뛰어넘어 모든 산업부문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치며 세상을 변화시켰다.

자동차(自動車·Automobile)는 자체 엔진을 통해 생산한 동력을 이용해 바퀴를 움직이는 물체로서 도로 위에서 승객과 화물을 운반하는 교통수단이다. 엔진이 탑재된 최초의 자동차는 1769년 프랑스 공병장교였던 니콜라 조제프 퀴뇨가 선보인 2기통 3륜 증기자동차로 기록돼 있다. 그동안 영국, 미국, 독일 등에서 자동차 제작과 발명이 시도됐고, 세계 최초의 휘발유 내연기관 자동차는 독일의 칼 벤츠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이 자동차는 1886년 특허 취득에 이어 1888년 생산 판매됐다. 3륜의 이 자동차는 무게 250㎏, 200 rpm에서 0.85마력의 동력을 내는 1기통 4엔진을 탑재했으며, 시속 16㎞의 속도로 달렸다. 1893년 이후 미국에서는 듀리에 모터 웨건, 포드 등이 잇따라 설립돼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자동차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큰 기술적 진전을 이뤘고, 다양한 기능과 디자인을 갖춘 차종이 생산됐다. 특히 포드사는 1920년대 이후 포도모델 A, 포드 모델 T의 엄청난 성공에 힘입어 세계적 자동차 기업으로 부상했다. 현대식 자동차의 대부분 기술은 1930년대까지 발명됐고, 고급화돼 갔다. 미국·영국·독일 등이 주도하던 자동차시장에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한국전쟁 특수를 거치며 축적한 기술을 토대로 세계 시장에 진입했다.

우리나라는 현대자동차가 1970년대 이후 일으킨 '포니 신화'를 디딤돌 삼아 1990대 이후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현대차는 1974년 말 국산 첫 고유모델 자동차 '포니'를 내놓았다.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의 엔진을 탑재한 포니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주지아로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작됐으며, 현대차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낸 최초의 국산 자동차였다. 이에따라 우리나라는 세계 16번째, 아시아 2번째로 고유모델 자동차 생산국이 됐다. 첫해에 1만 726대가 판매됐고, 국내 승용차 시장점유율은 43.5%에 달했다. 포니는 1976년 7월 국산차 최초로 에콰도르에 수출되는 기록까지 세웠다. 1985년까지 총 29만 4000여 대가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포니는 1982년부터 생산된 '포니2'로 이어졌고, 포니2는 1990년 1월까지 35만 9000여 대가 팔린 장수모델로 기록됐다.

 

 

전북고속의 전신인 전북자동차상회의 최승렬 대표. (desk@jjan.kr)

▲ 고종 전용어차 포드 A형 리무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자동차는 대한제국 황실이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을 맞아 1903년 미국 공관을 통해 수입한 미국 포드사의 '포드 A형 리무진'으로 기록돼 있다. 칭경식(고종 즉위 40주년 행사)의 전용 어차로 들여온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고종은 칭경식 당일 이 자동차를 타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어 1908년에 2대의 자동차가 추가 수입됐다. 한 대는 고종황제용 영국제 검정색 다임러 리무진, 다른 한 대는 순종황제용 프랑스제 빨강색 르노 리무진이었다. 1910년에 수입된 캐딜락은 순종황후가 탔다고 전해진다.

1911년에는 일제의 조선 초대총독 데라우찌가 고종 환심용으로 자동차를 들여왔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에서는 서양 외교관이나 기술자, 선교사들이 갖고 온 자동차가 일찌감치 들어와 운행됐을 것으로 보인다. 1901년 봄 미국 시카고대학의 버튼 홈즈 교수(사진학)가 한강을 구경하러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소달구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는 등 이야기가 있는 것.

일반인들이 자동차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1910∼1913년 쯤으로 추정된다.

▲ 버스 요금이 쌀 한 가마니값

1911년 경남 진주에 살던 일본인 에가와라는 사람이 포드 8인승 무개차 1대를 들여와 '마산-삼천포'간을 운행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버스영업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버스는 저녁이 되면 천막지붕과 가스등을 설치하고 운행했다. 버스요금은 1인당 마산∼진주 3원 80전, 진주∼삼천포 1원 30전이었다. 마산∼진주간 3원 80전은 쌀 한가마니 값이었다.

서울에서는 1913년 서울 낙산 부자 이봉래 씨와 일본인 곤도, 그리고 상인 오리이 등 3명이 합자, 자본금 20만원으로 첫 자동차회사를 세우고 '포드 T형' 승용차 2대를 도입해 시간제 임대 영업을 시작했다. 이는 우리나라 택시의 시초가 됐다.

1910년대 말, 이북지방에서는 방의석·방예석 형제가 8인승 포드차를 도입해 '함흥∼흥남'구간에서 독점 영업을 했다.

1915년 3월에는 충남 갑부 이종덕·박갑순씨 등이 천안∼예산, 공주∼조치원 노선을 허가받아 운송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는 조선인 최초의 운송사업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운송사업은 대부분 일본인들이 영위했지만, 이 무렵부터 내국인들도 운송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 최승렬 형제, 전북자동차상회 설립

전라북도에서는 일본인 아마모토 에츠조오씨가 1914년에 포드 T형 4대를 들여와'야마모토 자동차부'를 설립, 전주∼이리, 전주∼남원간 노선 허가를 받아 영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자동차 사업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지 회사를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고, 전주 갑부 최종렬·최승렬 형제가 인수했다. 1920년 1월 무렵일이었다. 90년 전통의 전북고속 역사가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 때는 나막신과 당혜, 짚신을 신고 생활하던 사람들이 다양한 외국 문물과 함께 들어온 고무신의 매력에 빠져있던 때이다. 고무신이 대중 속으로 들어가던 때 선보인 자동차는 사람들에게 큰 문화적 충격을 가하였다. 1920년 당시 버스 요금이 1인당 2∼4원 정도(쌀 한가마 값은 6∼7원 정도)로 비쌌지만,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자동차운송사업은 가장 매력적인 사업 중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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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jhki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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