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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지하철에서 - 문효치

문효치(시인·계간 미네르바 발행인)

 

나는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혼잡한 지상의 교통수단과는 달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약속시간을 지킬 일이 있을 때는 지하철이 가장 편리하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가 거대화 되면서 복잡화 되고 그래서 교통도 여간 혼잡스런게 아니다. 지상의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자연히 사람들의 지혜는 땅속에 교통시설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하철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교통시설 중에 매우 효율적인 수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하철에 대해 불평이 많다. 가끔 고장을 일으켜 너무 놀라게 한다든가 내부의 공기가 너무 오염이 되었다든가 환승역에서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는 통로가 너무 멀다든가 등.

 

사실 지하철은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햇빛을 볼 수 없는 땅속이라는 것은 매우 나쁜 조건임에 틀림없다. 햇빛은 우리 몸에 생기를 북돋워 준다는데 그 햇빛이 없는 공간에 몸 담아 이용하는 것이 지하철이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경직되어 있는 것일까? 특히 출퇴근시간의 붐비는 차내는 짜증스런 심사를 일으키게 한다.

 

오늘도 종로 사무실로 가기위해 지하철역에 서 있었다. 한 번 환승하는 것을 포함해 대략 한 시간 가량 걸리는 지루한 시간을 염두에 두고 오늘의 일정을 마음속으로 점검하면서 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어쩐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듯 하고 마치 낯선 동굴 속에라도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스크린도어에 눈이 갔다. 짧은 시 한편이 흰 글씨로 쓰여 있었다.

 

이 컴컴한 동굴 속에 처음 시를 게시할 줄 안 사람은 누구일까? 비록, 위대한 일은 아니지만 승객들을 배려한 그 따뜻한 마음의 진정성을 생각하며 나는 스크린도어에 쓰인 시를 읽었다. 책상에 앉아 시집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예상치 못한 시와의 만남, 내가 선택한 시가 아니라 우연히 마주친 시와의 조우, 이렇게 우연히 만난 한 편의 시는 내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때때로 차갑고 시끄러운 쇳소리가 엄습하고 바쁘고 긴장된 마음으로 굳은 표정의 사람들이 침묵의 화신처럼 서성이는 지하동굴, 이 동굴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난 듯 환해진다. '시는 국가의 보석이라'느니 '시인은 인류 최후의 양심이라'느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는 아름다움의 집이다' 느니 '시인은 어둠 속에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노래 부르는 나이팅게일이다' 느니 하는 고답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럽고 각박한 하루시작의 분위기를 산뜻하게 전환시켜주는 한 편의 짧은 시를 말 하고자 할 따름이다.

 

단 몇 분동안에 읽은 시의 여운을 가지고 차를 탄다 그 시를 쓴 시인을 생각해 본다. 그 몇 줄을 쓰기 위해 많은 생각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또는 번민에 빠지기도 하고 혹은 기도처럼 경건하고 삼가며 마음을 맑히기도 했으리라.

 

시인의 맑게 가라앉은 마음을 생각하며 내 마음도 맑혀본다 오늘의 바쁨을 조금 덜어내고 여유를 갖도록 생각을 바꾼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가끔씩 여유를 갖는 것은 각박함 속에 갇혀있는 우리자신에게 내 스스로가 줄 수 있는 작은 배려요 선물이기 때문이다.

 

잘 살펴보면 세상은 여기저기에 많은 시가 있다. 꼭 문자로 기록되어진 시만이 시가 아니다. 계절에 따라 변화 하는 자연계의 모습들을 사실은 시라고 할 수 있다. 그 생명체들의 삶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하찮은 이름 없는 풀꽃도 잘 살펴보면 많은 뜻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들 속에서도 우리를 감동케 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일 그것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

 

/문효치(시인·계간 미네르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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