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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왜, 외줄일까?" - 진대권

진대권(전북신보재단 이사장)

일요일 아침, 평소보다도 일찍 잠에서 깨었다.

 

월요일로 예정된 칼럼 원고의 마감시한을 맞추려면 며칠 전부터 준비한 내용을 서둘러서

 

다시 한 번 들여 다 보고 수정할 부분과 추가해야 할 사항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나에게 아내는 "왜 이렇게 일찍 일어 나느냐?"라고 묻기에

 

그 내용을 설명했더니 "이제껏 준비하지 못했냐?"며 핀잔이다.

 

어찌됐건 안개가 산허리를 감싸고 있어 늘 상 바라다보는 모악산도 눈에 담지 못하고

 

그 동안 몇 자 적어 놓은 초안을 손질하는 도중 덜거덕거리는 소리에 베란다 쪽을 바라다 본 나는 내용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층이 더 되는 아파트 외곽 유리창 청소를 위해 줄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왜, 외줄일까?"였다.

 

무려 40m 가까운 높이에서 허공의 외줄 한 자락에 몸을 의지한 채 유리창을 닦는 사람들

 

실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필자의 원고내용을 송두리째 확 바꿔 버렸다.

 

서두에 장황한 얘기를 곁들이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네들 생각이 시시때때로 변화할 수 있기 마련으로 갖가지 주변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며, 또한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해 보고자 함 일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유학자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여러 강의 내용중 에서

 

최근의 사태를 조명해 보는데 도움이 되어 인용해 보고자 한다.

 

그 유학자분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선생(先生)이라는 호칭은 유학에서는 학식과 덕망을 함께 겸비한 학자에 대한 최고 존경의 표현이며,

 

선생이라 함은 어떤 의미의 물질적 댓가를 받지 아니할뿐더러 아무리 뛰어난 학자도 생전(生前)에는 얻을 수 없는 칭호였다고 한다.

 

우리의 오백년 역사를 가진 조선왕조가 여러 위태로운 곡절을 겪으면서도 이어져 내려 올 수 있었던 것은 유학을 근본으로 하는 정신적 가치가 그 기반이었다고 한다.

 

선생(先生)!

 

앞서 기술한 것처럼 가르치는 댓가를 물질적으로 받았던 훈장(訓長)과는 사뭇 다른 한 차원 높은 당시 사회의 정신적 지도층이었던 것이다.

 

세계사에서 18~19세기는 열강의 제국주의 시대 였다.

 

일본은 뒤늦게 제국주의를 표방하며 우리를 군사적으로는 침탈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정신적 가치와 문화의 열등감은 숨길 수 없었던 듯싶다.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범접하지 못하는 치명적 한계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의 민족정기 말살을 획책하였다.

 

선생이라는 문화적 표현마저도 두려워 이를 폄훼(貶毁),폄하(貶下)하지 않을 수 없었다니 안타까운 일본이여!

 

강의를 듣고 난 뒤 필자가 생각한 것은 상생이었다.

 

얼마 전 일본총리 하토야마는 독도에 대한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독도영유권 교과서 수록'의 일본 문부상의 발언과 때때로 각료들의 역사왜곡의 망언이 이어지긴 했으나 총리의 발언은 처음이다.

 

그 발언의 근저에 일본내의 정치적 위상을 제고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하지만 필자는 그 의미를 무시한다.

 

때문에 그들이 역사적 사실로 증명될 수 있는 사항마저도,

 

빈약한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이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모습을 보면서 몸부림치는 일본의 참아(慙我)를 생각해 본다.

 

일본의 하토야마 내각은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집권하면서 한·일간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전향적 접근의사를 피력한 바 있으며 우리 또한 실체적 진실에 대한 그들의 변화를 기대한 바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유지되어 온 일본의 근본을 들여다보면 자기들 주장에 대한 가치관을 훼손하면서까지 진실에 접근해 보고자 하는 양심세력이 없는 듯하다.

 

일본의 사학자들 마저 양국의 역사적 사실을 토론하고 증명하자는 우리 사학자들의 제의마저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은 더 깨우쳐야 할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는 그 때를 달리할 뿐 실체적 진실을 반드시 증명해 왔다는 사실과 함께 한 순간의 호도(糊塗)와 왜곡이 가능하다 해서 이를 악용한다면 그들 모두가 범죄자의 오명을 뒤집어 쓸 수 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도래한 세계화는 현 인류사회의 보편적 흐름이다.

 

이 보편적 대세에 필요한 중요가치관중의 하나가 상생이다.

 

일본은 정녕 상생을 포기한 것인가?

 

아울러서 외줄을 타며 유리창을 닦던 사람의 눈빛이 떠오른다.

 

여러 가닥의 줄을 같이 매어 줄 수는 없는 것인가?

 

서로 노력하면서 함께 살아가자.

 

/진대권(전북신보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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