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10 11:46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전시·공연
일반기사

[최동현의 명창이야기] (28)학식 높았던 명창 김연수(6)-임방울과 김연수

"절대 질수 없다" 판소리계 라이벌…함께 공연한 무대서 심술 발동하기도

김연수의 소리동기였던 노희상과 수제자 오정숙(김연수 묘소). (desk@jjan.kr)

김연수는 임방울보다 2년 늦게 태어났다. 판소리계에 데뷔한 것도 임방울이 1929년이었던 데 비해서 김연수는 데뷔 연도가 분명치 않지만,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에 가입하고 정정렬에게 판소리를 배운 뒤라고 한다면, 1935년이나 1936년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데뷔 시기도 임방울보다 6~7년이 늦다. 데뷔 시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데뷔의 과정이다. 임방울은 상경과 함께 바로 크게 이름을 날려 방송 출연, 음반 제작 등으로 이어지는 활동을 하였다. 이른바 스타 탄생이라고 할 만한 특징을 갖추고 있다. 김연수의 데뷔 과정은 스타 탄생이라고 할만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임방울과 김연수는 굉장한 라이벌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들에 얽힌 일화도 많다.

 

김연수는 임방울에 비해 목이 좋지 않았다. 임방울은 남자 목소리로는 최고로 치는 목을 가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임방울은 아무렇게나 해도 소리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김연수는 목이 나빴다. 거친 수리성을 가졌기 때문에 아무래도 곱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운 목소리를 가졌던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 김연수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대단한 목소리인 것은 분명하다. 오랜 수련 끝에 얻을 수 있는 단단하고 긴장감 넘치는 목소리를 김연수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역시 거친 점이 문제였다. 또 임방울은 학식이 거의 없었는데, 김연수는 신식 교육을 받을 만큼 받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임방울은 소리를 논리적으로 따져서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자신의 감성대로 불렀다. 김연수는 역시 학식이 풍부한 사람답게 소리를 논리적으로 따져가면서 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김연수는 '이면에 맞게 소리를 해야 한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런 태도에 대해 임방울은 "이면 찾다가 소리 망친다."고 했다. 그러니까 임방울과 김연수는 단순한 라이벌 관계가 아니라, 소리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청중들은 임방울의 소리에 환호를 보냈다. 김연수는 그것이 아마도 상당히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임방울과 김연수는 같은 무대에 잘 서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가끔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었던 모양이어서, 임방울과 김연수에 얽힌 이야기들이 더러 전해온다.

 

한 번은 임방울과 김연수가 같이 공연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연수의 심술이 발동을 했다. 소리꾼은 우렁을 먹으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는 김연수가 우렁회를 사가지고 와서 임방울에게 권했다. 임방울은 우렁회를 맛있게 먹었다. 마침내 임방울이 소리를 할 차례가 되었다. 우렁회를 먹었으니 임방울의 목소리가 안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임방울의 목소리는 평상시나 다름없이 잘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 목소리를 들은 김연수는, "목 좋은 놈은 우렁을 먹어도 잘 나오네."하면서 투덜거렸다고 한다.

 

한 번은 또 남원에서 이들 둘이 공연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많거나 이름 있는 명창이 제일 나중에 무대에 나오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다. 김연수가 임방울보다 나이가 적었기 때문에 이때도 김연수가 먼저 소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연수는 소리를 길게 끌다가 끝날 시간이 다 되어서야 소리를 마치고 들어갔다. 임방울이 다음에 나왔지만 소리를 할 시간이 없었다. 예전에는 야간 통행금지가 있었기 때문에 11시 반 이전에는 공연을 끝내야 했다. 청중들이 난리가 났다. 임방울의 소리를 못 들었으니 공연 시간을 연장하라고 아우성을 쳤다. 어쩔 수 없이 경찰서장이 나와 특별히 허가를 해주어 공연 시간을 연장하고 임방울의 소리를 들은 뒤에 공연을 끝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여기서 따질 필요는 없다. 다만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며, 그럴 듯하게 들린다는 것은 그만큼 두 사람 사이가 묘한 긴장 관계 속에 있었다는 것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전에는 아무래도 김연수는 임방울만큼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사후에 김연수의 소리는 점점 세력을 키워 마침내는 우리나라를 판소리를 대표하는 소리가 되었다. 임방울 사후에 임방울의 소리가 전승이 끊어지다시피 한 데 비하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