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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호의 클래식과 친해지기] (29)쇼팽과 리스트②

한 편의 시 읽는 듯 아름다운 선율

바르샤바 근교에서 프랑스계 아버지와 폴란드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쇼팽은 어려서부터 피아노, 즉흥연주, 작곡에 천부적 재능을 보여 7세에 이미 첫 작품을 출판했고 빈, 독일, 이탈리아로 피아노 연주여행을 다니며 천재의 명성을 떨쳤다. 현란한 기교와 함께 조국에 대한 애국 정서를 피아노로 표현하는 그의 피아노 음악은 특히 폴란드에서 열렬한 추종자들이 생겼으나 러시아 지배에 항거하던 폴란드혁명이 실패하자 바르샤바를 떠나 파리에 정착한다. 피아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며 아마추어와 전문가 모두에게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해주던 쇼팽은 파리에서 음악가 로시니, 마이어베어, 베를리오즈, 리스트, 시인 하이네, 화가 들라크루아 등과 친분을 쌓으며 리스트의 안내로 파리 상류층 사교계에 진출하였다. 당시에는 예술가로 성공하려면 파리 상류층 귀부인들의 공인을 받아야 수월했단다. 예술분야에 대한 그녀들의 입김이 강했다는 얘기겠다.

 

헝가리에서 태어난 리스트는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아버지에게 6세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빈으로 이사한 뒤에는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Karl Czerny, 1791~1857)에게 피아노를, 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1825)에게 음악이론과 대위법을 배웠다. 11세 때 이미 공공 연주회에서 청중들을 경탄시킨 그는 이듬해 파리로 이주하여 작곡과 이론을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다. 쇼팽보다 먼저 파리 상류층 사교계에 등장했던 그는 피아노 비르투오소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기 시작하며 상류층 귀부인들과의 공공연한 연애사건으로도 유명해졌다. 이른바 팬 그룹을 몰고 다니며 스타로서의 인기를 누렸던 것이다. 이 때쯤 리스트는 같은 피아니스트인 쇼팽을 파리 사교계에 소개했다.

 

리스트는 슈만 부인 클라라와 더불어 피아노 연주시 악보를 온전히 다 외워서 연주하는 첫 피아니스트로서도 유명하다. 그들 때문에 피아노 연주는 악보를 다 외워서 연주해야 하는 관례가 생긴 셈이다.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Nicolo Paganini, 1782~1840)의 환상적인 바이올린 기교에 감명받은 리스트는 파가니니가 이룬 바이올린에서의 전설적 비르투오소 업적을 피아노에서 이루고자 피아노의 기교를 한껏 발전시켜 '피아노 황제'라는 칭호를 듣는 것이다.

 

리스트는 피아노 비르투오소로서 뿐만 아니라 클래식의 새로운 장르인 교향시(Symphonic Poem)를 탄생시켜 클래식에 큰 공헌을 했다. 문학적 내용을 교향악에 담고자 하는 생각에 시적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교향곡의 틀을 벗어난 교향악에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교향시를 창안한 것이다. 교향시는 표현하고 싶은 내용을 교향악으로 표현하는 한 악장으로 된 표제음악으로, 문학에 비유하자면 교향악 '시(詩)'이다. 대개 그림, 연극, 시, 풍경 등을 표현하며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아예 작품 제목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괴테의 <파우스트> , 단테의 <신곡> 을 읽고 영감을 받아 똑같은 제목으로 리스트는 교향시를 작곡했고, 교향시 <오르페우스> 는 리라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오르페우스가 그려진 루부르박물관의 에트루리아 꽃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낭만 가득한 리스트! 그의 교향시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는 바그너의 총체예술 음악극에 비견되기도 하니 바그너를 비롯한 많은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그는 풍부한 낭만을 물려준 셈이다. 낭만을 너무 과하게 물려준 셈인가? 있는 얘기, 입 방앗꾼들처럼 리스트와 바그너에 얽힌 스캔들을 얘기해 보자면, 리스트의 딸 코지마는 바그너와 사랑에 빠져 지휘자이던 남편 한스 폰 뷜로우를 떠나 바그너와 결합했다고 한다. 한스 폰 뷜로우는 바그너의 제자였으니 바그너는 제자의 아내를 사랑했던 것이다. 자신의 오페라 단원이었던 첫 부인 미나가 세상을 떠난뒤 4년 후 정식으로 결혼하고 부부가 되는데, 그 때 이미 3명의 자녀가 있었단다. 부운같은 세상사에 회한을 느껴서이었을까? 리스트는 52세 때 카톨릭의 프란체스코 수사 서품을 받아 몬테카를로 마돈나 델 로사리오 수도회에 들어가 진지한 성찰의 삶을 살며 <그리스도가 탄생하시다> 등 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하였다. 리스트의 명성은 그 후로도 더욱 높아져 60세 때는 헝가리 왕실의 고문으로 초빙되는 명예도 누렸다.

 

'피아노 시인' 쇼팽과 '교향악 시인' 리스트는 고국 폴란드와 헝가리를 떠나 파리에서 우정을 나누며 음악으로 시를 썼던 음악시인들이었다. 클래식을 즐기려면 쇼팽과 리스트 음악을 들으라고 했다던가? 그들 음악을 듣노라면 한 편의 시를 귀로 읽는 듯한, 햇볕 따뜻한 봄날에 아름다운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인 것을….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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