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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친환경 표고버섯 재배 정읍 산내 김완수씨

"시골선 잃어버린 꿈 되찾게 해주죠"…좋은 먹을거리 학교급식 제공에 자부심도

운암호가 내려다 보이는 농장에서 김완수씨가 참나무 원목에 표고버섯 종균 접종 작업을 하고 있다. 안봉주(bjahn@jjan.kr)

"도시생활이 희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시골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인 도시를 바라보며 던진 친환경 표고농사꾼 김완수씨(53)의 화두다.

 

"일손이 없어 부지깽이도 한몫 한다는 오월의 농촌은 노숙자들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상황입니다"

 

김씨는 거듭 건강한 생활을 위해 시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4년전부터 옥정호가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아담한 집을 짓고 표고농사를 짓는 김완수씨를 방문한 5월의 산천은 싱그러움을 맘껏 뽐내고 있었다.

 

운암댐 인근 산비탈에 자리잡은 마을 산호수마을. 비탈면을 낀 김씨네 농장은 외졌다.

 

표고 종균 작업에 바쁜 김씨와의 인터뷰도 잠시, 이웃집 아저씨와 어릴적 친구 한분이 들렀다. 금방 분위기가 산만해 진다.

 

방문객들은 "김씨의 일상사가 그렇다"면서 "내외 두분만 밥먹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김씨의 큰 '통'이 주변과의 친화력으로 나타나는데다 김씨 부인의 마음씀씀이가 좋아 주변에서 늘상 제집처럼 편하게 드나든다는 것.

 

김씨는 인터뷰 도중 "내 자신이 내세울 만한 인물이 못된다"면서도 "사람냄새 나는 얘기를 하려면 막걸리 한통개를 들고 계곡(집 안쪽에 시원한 계곡이 인접해 있다)에 들어가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

 

질풍노도의 젊은시절을 거쳐 이제 '먹고 살기 위해' 산골에 정착한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자니 감회가 너무 깊은 것이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완수씨가 고향집 맞은편 산자락의 산호수마을에 들어온 것은 4년전. 어렵게 풀어놓는 그의 인생사는 80년대 초부터 시작된다.

 

김씨는 군사정권시절 불의에 맞서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민주화 운동에 온 몸을 던졌다.

 

학생과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휴식공간을 운영했는가 하면, 구로공단내에 시위하다가 다친 사람들을 위한 간호, 요양시설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아내와의 갈등이었습니다" 애들은 커가는데 도대체 생활방편을 생각하지 않으니, 부인으로선 당연한 푸념이었고 불만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한 시대를 겪으면서 사내가 뭔가는 해야 되는 것 이니겠나"하면서 곤궁한 삶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면 그 고통을 극복해야 의미있는 것 아니겠냐는 그만의 굳은 신념이 있었다.

 

결국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자 '민주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던 꿈이 이뤄졌으니 우리(나)의 소명도 다했다'고 생각한 김완수씨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시골로 내려왔다.

 

이제부터는 가정을 챙겨야 겠다는 생각에서 칠보에 내려와 건강원을 운영했으나 형편이 나아지질 않았다.

 

고심끝에 종성리 비탈산을 사들여 표고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오래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친환경 농법으로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졌다.

 

하우스에 1만여본을 키우는 표고버섯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믿고 사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 보람을 느낀다고. 특히 학교급식으로 어린이들에 좋은 먹을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것도 큰 자랑이다.

 

한창 종균을 심는 작업을 하고 있는 농장은 일손이 모자라 주변 친구들의 손을 빌리기도 한다.

 

종성리에 정착할 때의 일화 한토막.

 

사들인 땅에 오염되지 않은 계곡이 있었는데, 그곳을 탐낸 사람이 산값의 두배를 줄테니 팔라고 제의했다.

 

친구들은 빨리 팔아서 더좋은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냐고 조언했다. 비탈을 일궈 표고농장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 보여서였다.

 

그러나 그 후 김씨농장을 방문할 때마다 친구들은 놀라야 했다. 잡풀만 우거져 황무지같던 산비탈이 하루가 다르게 모양을 잡아갔던 것.

 

김씨 친구들은 "참, 황소같은 면이 있는 친굽니다. 저 험악한 비탈을 혼자 힘으로 길을 내고, 다듬고 하는 걸 보면서 사람의 집념이 무섭다는 걸 깨닫곤 합니다"고 말한다.

 

소싯적에 배운 붓글씨에도 일가견을 이루고 있는 김씨는 "차분히 내 삶을 돌아볼 여유를 주는 붓글씨 쓰기가 너무 좋다"면서 "표고일이 바쁜 계절에는 아예 붓을 잡지 않는다"며 솜씨를 감췄다.

 

김씨의 거실에는 막대저울이 하나 걸려 있다.

 

막대저울처럼 형평성있게 인생을 살자는 의미라고.

 

"우리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김씨는 "친구들이 찾아와 쏟아지는 별빛을 보며 소주 한잔에 인생얘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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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섭 chungds@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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