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10 14:45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전시·공연
일반기사

[신상호의 클래식과 친해지기] (31)교향곡 이야기②

100여곡 작곡…장르 완성…'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하이든 (1732~1809) (desk@jjan.kr)

18세기 초 이탈리아의 오페라 서곡 신포니아는 '빠름-느림-빠름'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진 관현악 음악이었다. 초기에는 세부분이 악장으로 나눠지지 않고 연결되는 음악이었으나 고전시대 초에 '빠름-느림-빠름'의 각 부분이 확장되면서 완전히 나눠지는 3악장 구조가 된다. 오페라에서 독립하여 교향곡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전시대 초의 교향곡들은 대부분 3악장 구조였다. 가끔 유쾌하고 재미있는 분위기의 미뉴에트(Minuet)가 첨가되기도 하면서 4악장 구조로도 나타나다가 결국은 4악장 구조가 정형화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교향곡은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으로 퍼져나갔고 만하임, 베를린, 빈, 파리, 런던, 밀라노, 포츠담이 그 중심이었다. 독일 만하임의 팔라틴 선제후 궁전은 당시 유럽에서 음악이 가장 융성하여 그곳에서 행해지는 음악을 만하임악파(Mannheim School) 음악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보헤미아 출신 작곡가 요한 슈타미츠에 의해 철저하게 훈련된 만하임오케스트라는 특히 국제적으로도 유명했으니 음악의 '점점커짐(Crescendo)'과 '점점여림(Diminuendo)'을 오케스트라로 아주 섬세하게 표현하여 <만하임 크레센도> , <만하임 디미누엔도> 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였다. 3화음들의 단계적 상향 음형을 잘 표현하여 <만하임 로켓> , 애절한 느낌을 교향악적으로 잘 표현하여 <만하임 탄식> 등 만하임오케스트라와 관게되는 재미있는 음악용어가 많음은 만하임 오케스트라가 그만큼 수준이 높았다는 반증이겠다.

 

파리에서는 오케스트라와 비르투오소적인 독주악기들이 재미있는 대화를 하듯 음악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교향악 장르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Sinfonia Concertante)가 나타났다. 협주교향곡(Symphony Concertante)이다. 오케스트라와 둘, 셋, 넷의 독주악기가 대비와 조화를 반복하는 유쾌한 교향곡인 것이다. 고섹(Gossec, 1734~1829)이 활동하는 파리에 밀라노의 사마르티니(Giovanni Battista Sammartini, 1700경~1775), 만하임의 슈타미츠, 빈의 바겐자일(Georg Christoph Wagenseil, 1715~1777) 등 당대 유명한 교향곡 작곡가들이 몰려와 18세기 중엽의 파리는 명실공히 교향곡의 작곡과 출판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화려한 독주적 기교와 진지한 관현악이 어울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이 음악을 당시 파리 대중들은 참 좋아했었다고 한다. 작곡가나 연주자도 자신의 기량을 뽐낼수 있는 형태의 이 음악을 역시 좋아했었다. 전주시립교향악단이 지난 4월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에서 연주한 프로코피에프(Sergey Prokofiev, 1891~1953)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마단조> 는 이 전통이 20세기까지 이어져 온 음악인 것이다.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은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작곡하며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음악을 완성하였기에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다. 그는 고전주의의 이상이던 균형과 조화를 교향곡으로 아주 잘 표현하였다. 하이든의 교향곡에는 <아침> <낮> <고별> <옥스퍼드> <놀람> <시계> <기적> <곰> <암탉> <멍청이> 등 흥미로운 이름의 교향곡이 아주 많다. 그러나 이 명칭들은 하이든이 붙인 것이 아니고 하이든의 교향곡이 하도 많다보니 후세 사람들이 구별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란다. <옥스퍼드> 교향곡은 옥스퍼드대학에서 1791년 명예박사를 받을 때 연주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놀람> 교향곡은 공공연주회에서 제자인 플레옐(Ignaz Pleyel,1757~1831)과 경쟁적 연주회를 할 때 플레옐 선율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 마음을 돌리기 위해 느린 악장에서 의도적으로 갑작스런 큰 소리를 넣었기 때문에 <놀람> 교향곡으로 불리게 되었듯이 말이다.

 

하이든의 오케스트라는 1대의 플루트와 2대의 오보에, 2대의 바순, 2대의 호른, 그리고 12~16명 정도인 제1·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비올(콘트라베이스)의 현악기와 쳄발로로 구성되는 25명 정도였다. 가끔은 트럼펫과 팀파니가 첨가되기도 했다. 30년 이상 아낌없는 후원을 해주던 에스테르하치공이 세상을 떠나자 영국은 하이든을 초청했고 초청을 받아들인 하이든이 영국에 건너가 교향곡을 작곡하며 지휘활동을 할 때 영국은 하이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며 환대했다. 하이든은 이 환대에 대한 보답으로 12개의 <런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마지막 여섯곡 중 하나를 제외하고는 나머지곡에 모두 클라리넷을 첨가하였다. 교향곡에 클라리넷을 넣는 것은 당시에는 아주 새로운 발상이었다.

 

"하이든! 선율로 표현되는 예술의 위대한 지배자여! / 그대의 작품은 음악으로 산과 바다와 비옥한 평야가 그려진 풍부한 세상을 보여주는구려. / 그대의 영향을 받지않고 생각하며 연주하는 예술가가 과연 있겠는가?"

 

당 시대 음악역사학자 찰스 버니의 칭송이다.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북일보 desk@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