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가 문화재청에 국내 유일의 후백제 유적지인 동고산성(전라북도 기념물 제44호)을 국가 사적지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키로 했다. 이와 함께 동고산성 터와 주변부지의 후백제 문화유적을 본격적으로 복원키로 했다.
동고산성은 1980년대 처음 발굴을 시작해 지난해 까지 총 6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후백제의 왕궁터임을 입증하는 북문터와 건물터, 주춧돌, 건물 배수로 등 다양한 유구가 발굴되었다.
특히 전주성명연화문와당(全州城銘蓮花紋瓦當)이 발견돼 당시 성의 이름이 전주성임이 밝혀졌다. 지난 해에는 성벽 일부 발굴과 백제시대의 전형적인 축성기법도 확인되었다.
전주시는 이러한 조사를 토대로 2014년까지 100억 원을 들여 1588m에 이르는 성곽보수와 왕궁 및 부속건물, 회랑도 정비, 우물터 등을 복원할 예정이다. 문화재청이 전주시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가사적지로 지정되면 복원비의 70% 가량을 국비로 지원받을 수 있다.
아다시피 전주에는 역사적으로 두 개의 큰 흐름이 있어 왔다. 하나는 후백제의 도읍이었다는 사실이요, 또 하나는 조선의 발상지였다는 사실이다. 전자(前者)는 슬프고 망각된 역사요, 후자(後者)는 존중되는 역사였다. 시기적으로도 전자는 오랜 세월이 흘렀고 후자는 최근이 일이다.
이러한 복원사업은 망각된 역사를 다시 일으며 세우는 의미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견훤이 세운 후백제는 한때 후삼국의 제일 강자요, 일본이 우러르는 한반도의 정통세력이었다. 900년에 무진주(광주)에서 전주로 도읍을 옮기고 백제 부흥과 신라 타도를 외치면서 국가체제를 갖추었다. 전남과 전북, 충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중국과 교류하면서 신라의 수도 경주를 함락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호족과의 불타협과 아들과의 불화로 인해 후삼국 통일의 꿈을 접어야 했다.
당시 견훤이 대내외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안정적인 기반을 닦도록 해 준 곳이 바로 전주요, 그 근거지가 동고산성 일대였다.
문화재청은 이러한 역사와 그 터가 비교적 온전히 보존돼 있다는 사실을 올바로 인식했으면 한다. 그래서 국가 사적지 지정도 전향적으로 검토해 주길 바란다.
비록 짧긴 하나 1100년 전,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되살아나 전주시민의 자존심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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