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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광화문에도 붉은악마 있었다

1936년 8월 9일 일요일 밤.

 

광화문 139번지 동아일보 사옥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동아일보 사옥 밖에 내놓은 라디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중계방송을 듣기 위해서였다.

 

밤 11시2분 라디오 스피커에서 '탕'하는 출발 총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손기정!" "남승용!"을 외쳤다.

 

자정 무렵 선수들이 17km 지점을 지날 때 중계방송은 중단됐다. 하지만 현지와의 전화 연결을 통해 손 선수가 1위로 달리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들자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흥분했다.

 

새벽 2시께 동아일보 사옥 2층 창을 통해 여자 아나운서가 손 선수의 우승 소식을 전하자 광화문은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이날 아침 각 신문은 일제히 호외를 발행했고 신문 지면은 손 선수와 동메달을 딴 남승용 선수 사진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기업들도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손기정 신드롬'을 광고 등 돈벌이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부교수가 쓴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봤던 장면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4강 신화를 쓴 2002한일월드컵 때도 광화문과 인근 서울광장은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는 붉은 악마들로 가득찼다. 신문들은 연일 월드컵 기사를 쏟아냈고 기업들도 온통 월드컵 응원 광고에 매달렸다.

 

최근 열기를 더해가는 남아공 월드컵도 마찬가지.

 

저자는 이 책에서 스포츠와 국가, 스포츠와 민족을 동일시하는 스포츠 민족주의가 한국에서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추적한다.

 

이 책의 제목 '조선의 사나이거든 풋뽈을 차라'는 1920년 월간지 '개벽'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축구를 하면 다리가 길어지고 튼튼해져서 민족적인 신체 결함을 고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일제 치하 일본인들의 근거 없는 차별과 멸시 속에서 '민족 신드롬'이 일어났고 여기에 1926년 순종의 인산일(因山日.출상일)과 1936년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을 계기로 상업 미디어, 자본의 힘이 결합하면서 스포츠 민족주의가 형성됐다고 말한다.

 

이 책은 2005년 출간된 '끝나지 않은 신드롬'에서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고 필요한 내용을 추가한 개정판이다. 월드컵 열기를 잠시 식히고 차분하게 읽어볼 만하다.

 

푸른역사 펴냄. 420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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