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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는 영화에 모든 것 바친 노력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농담처럼 '나에게는 행운의 여신이 곁에 있다'는 말도 했지만 대단한 노력가였습니다. 영화를 위해 모든 시간을 투자했고 온 신경과 생각이 영화에 집중돼 있었죠.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었지만 항상 돌파구를 찾고 다음 작품을 내놨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주저앉았을 거에요."

 

일본 영화의 거장 고(故)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1번째 영화인 '라쇼몽'(1950)부터 마지막 30번째 '마다다요'(1993)까지 그의 영화에서 스크립터와 프로덕션 매니저로 일한 노가미 데루요(83.여)씨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노가미씨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영상자료원과 일본국제교류기금 등이 지난 1일부터 8월29일까지 그의 대표작 24편을 상영하는 특별전에 초청됐다.

 

인터뷰를 위해 최근 만난 노가미씨가 건넨 명함에는 '구로사와 아키라 창작노트-7인의 사무라이' 편집위원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구로사와 감독은 모든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창작노트를 만들었습니다. 영화마다 보통 2~3권의 대학노트에 아이디어를 정리했는데 '7인의 사무라이'는 6권 분량이죠.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았던 기록인데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발견됐죠."

 

노가미씨는 "구로사와 감독은 자주 '천재는 기억이다'라는 말을 하셨다. 그분은 기억력도 뛰어났지만 인상에 남은 것은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말했다.

 

창작노트에는 대사나 아이디어, 톨스토이의 소설에서 발췌한 대목 등 다양한 메모가 적혀 있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는 '7인의 사무라이' 창작노트가 다음달께 출간된다.

 

그는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 인생에는 몇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극복해냈다고 말했다. "'라쇼몽' 다음에 찍은 '백치'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구로사와 감독은 영화를 찍기 어렵게 됐지만 '라쇼몽'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타는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어요."

 

구로사와 감독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 뒤에도 자살시도까지 할 정도로 시련이 계속됐다.

 

"미국 자본의 '도라도라도라'라는 영화를 준비하다 미국 영화사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잘리셨어요. 할리우드 제작방식과 충돌이 있어 술을 많이 드시고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 뒤 건재를 증명하려고 '도데카스덴'(1970)이라는 소품을 찍었지만 별로 흥행을 못했고 이후 자살까지 시도하셨죠. 그 후 러시아 쪽의 제의로 '데르스 우잘라'(1975)라는 영화를 하면서 부활하셨어요."

 

노가미씨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은 지금도 엄청난 고가에 거래되지만 영화는 만든 시점에서 표를 팔아야 하는 장르로, 구로사와 감독은 찍은 영화 중 손해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재능있는 감독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로사와 감독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미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사극을 할 때는 깃발이나 투구 같은 소품을 그림으로 다 그려 스태프에게 보여주는 등 모든 이미지를 스태프와 공유하려고 많은 시간을 기울였다"고 회고했다.

 

그가 구로사와 감독 작품 가운데 가장 높이 평가하는 영화는 무엇일까? 그는 "'7인의 사무라이'(1954)와 '붉은 수염'(1965)은 정말 잘 만든 걸출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가운데서는 구로사와 감독의 데뷔작인 '스가타 산시로'(1943)를 꼽았다. "첫 작품에는 풋풋함이 있고 감독의 성격도 많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전쟁 중에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싶을 만큼 잘 만들었어요. 관객으로서 영화를 보러 갔는데 초만원이라 문을 열어놓은 채 밖에서 볼 정도로 크게 성공했어요."

 

구로사와 감독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봤다. 노가미씨는 "촬영장에서는 영화에 몰입한 나머지 호통을 쳤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면서 구로사와 감독이 평소 하던 말을 인용해 답변을 대신했다. "나를 알고 싶으면 내 영화를 봐라. 모든 것은 영화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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