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경제생활팀장)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쏴악하고 땡볕이 내려쬐든,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져버렸으면 좋으련만 잿빛 하늘에 가는 비만 오락가락한다. 찌푸린 날씨, 사람들의 기분을 묘하게 자극한다.
얼마전 업무차 삼례를 거쳐 익산을 다녀왔다. 늘상 다니던 길이다. 삼례 시가지를 지나 옛 23번 국도로 접어드는데, 심한 악취가 풍긴다. 역시 이 곳을 지날 때마다 늘상 맡아야 하고, 해당 지점을 통과할 때까지 견뎌내야 하는 냄새다. 요즘같은 저기압에는 더욱 그렇다.
익산 왕궁축산단지는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서울이나 광주에서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씽씽 달리던 자동차 운전자, 승객들은 이 냄새를 맡고 자신의 위치를 금세 알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승용차 환기장치를 막거나, 열린 문을 닫아버린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일상이고, 습관이 됐다.
익산 왕궁축산단지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센인 정착을 위해 정부가 정책적으로 조성한 집단 축산단지이고, 그곳에서 나오는 축산물은 국내 축산물 수급에 긍정적으로 작용해 왔다. 그렇지만 엄청난 양의 축산폐수가 지류를 따라 만경강으로 수십년간 방류돼 왔고, 1990년대 중반에 건설된 축산폐수처리장은 처리용량 부족으로 인해 예산낭비 시설로 지목됐다. 수백억을 들여 시설한 축산폐수처리장이 기능을 다하지 못해 축산단지에서 나오는 폐수가 그대로 방류됐다.
정부와 지자체는 법과 규정을 내세워 미온적이었다. 지자체는 예산이 없고, 정부는 뒷짐만 져 왔다.
1991년 새만금방조제가 기공된 후 시화호 문제가 터지고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왕궁축산단지에서 쏟아져 나온 축산폐수 원액은 그대로 만경강으로 흘러들어갔다. 대책없는 행정으로 인해 어제도 흘렀고, 오늘도 흐르고 있는 축산폐수. 10만여평의 드넓은 단지에서 나오는 악취와 축산폐수가 흐르는 개천에서 퍼지는 냄새.
정부와 지자체는 지난 수십년간 축산단지 경영체와 주민, 통행인, 만경강, 그 주변에서 농사짓는 농부 등 모두에게 무책임했다.
최근 새만금방조제 준공을 전후해 왕궁축산단지 완전 철거를 위해 움직이고 있지만 아쉬움이 크다.
그들의 이번 움직임은 새만금방조제 수질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국민의 불편과 심각한 환경오염은 안중에 없었다. 평소 왕궁축산단지 축산폐수와 악취 문제가 진정 국민의 입장에서 다뤄졌다면 지금까지 지연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뭔가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최근의 움직임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무총리실과 새만금위원회, 전북도, 익산시 등이 왕궁축산단지 철거와 보상 등에 소요되는 예산 부담 문제를 놓고 논란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업 축사 매입과는 달리 300억원 대의 휴폐업축사 매입비에 대해서는 국비 지원 보상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전북도는 전액 국비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과거 왕궁축산단지가 결국 정부의 한센인 정책으로 조성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시커먼 축산폐수가 흘러나와도 사실 정부와 지방정부가 외면해 왔지 않은가.
새만금 수질오염 시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부가 문제 해결에 나서는 형국이 된 것도 실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뒤늦게 나선 만큼, 정부는 왕궁축산단지 완전 철거를 통한 오염원 해결에 적극 나서는 것이 옳지 않을까.
/김재호(경제생활팀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