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까지 총 50여 점 선봬
사진 속엔 새벽밥을 재촉해 먹고, 깨끗한 무명옷을 차려입은 할머니가 나온다. 풀을 빳빳히 먹여 다린 옥양목 입은 할아버지에게선 바람 소리가 난다. 계란을 짚으로 가지런히 묶고 참깨도 두어 되 보따리에 싸서 소달구지에 실려 보낸 참이다. 타박타박 시오리 길을 걸어 장에 당도하니 사람이 북적북적. 고등어 한 손이라도 사들고 돌아가려면, 지난 가을에 산 송아지가 제 값을 받을 수 있을 지 시세를 알아보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소전은 늘 활기가 넘쳤다.
공동체박물관계남정미소(대표 김지연)가 열고 있는 '잃어버린 장날의 축제'는 잊혀져가는 장을 기록한 사진전이다. 한국아카이브연구소가 내어놓은 1920년대 장날 풍경에 사진작가 이용원(74)씨의 1980~1990년대 장날 사진이 더해져 세월의 더깨가 묻어난다.
김지연 대표는 "일 년을 가도 눈과 마음이 호강하는 날이 없었던 시골 사람들에게 장날은 하나의 축제였다"며 "사람들을 위한 허세도, 상인들의 악다구니도 없는 장에 대한 향수를 되살려보고 싶었다"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장에는 반가움이 있었다. 이웃 동네 소식이 있었고, 장바닥 여론이 있었다.'훈 짐'나던 국밥집에서 오가던 막걸리 잔 사이로 "그저께 황산 양반이 결국 가셨디야."라는 소식을 들었고, "시상이 어찌 될라고 이란다냐."는 푸념도 있었다.
퇴직 공무원이었던 이씨가 시골 5일장을 쫓아다닌 것도 '정(情)'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어머니 손을 잡고 김제 죽산에서 7~8km나 되는 길을 걸어 부안장에 가 본 그리움이 컸다"는 그는 장이 서는 곳이면 어디든 필름카메라를 챙겨들고 나섰다. 남원장을 시작으로 장수 장계장, 순창장, 오수장, 임실 관촌장과 강진장, 진안 마령장 등 참 많은 곳을 기웃댔다. 사진 속 주인공 가운데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우도 적지 않다. 오랜 시간 찍다 보니 그의 사진은 이제 장날의 역사가 됐다.
"장날 소용없어, 아무것도 없은께.""대형마트가 바로 요 앞에 생겨갖고 더 안 돼 부러."
상인들의 이런 불평을 들을 때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그는 "젊다는 것, 화려하다는 것도 결국 한 때"라며 "장날은 사라져가는 '정'을 담고 있는 유토피아 같은 공간"이라고 했다.
전시를 둘러보다 보면 케케묵은 어제를 살고 있는 듯한 그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총 50여 점이 전시되는 이번 사진전은 18일까지 계속된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