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인은 끝까지 잘 듣고 관찰하는 사람"
문태준 시인(41·불교방송 PD)은 한 그루의 나무 같다. 그냥 그 자리에 나무처럼 묵묵히 서 있는 것이다. 또한, 차분하게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 17일 춘향골 문화공간에서 열린 전북시인협회(회장 유대준)의 '도심 속의 문학 강좌'에 초대된 그는 나직하고 겸허한 태도로 내밀하고 황홀한 시와의 만남을 이야기했다.
시는 '세계를 횡단해가는 예감 같은 것'이라고 했다. 시인은 "섬세하고 미묘한 움직임이 다 합해져서 '감(感)'으로 온다"며 술 익는 듯 익어서 나오는, 우러나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시는 '관계의 재발견'이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대상과 주고 받는 것으로 관계를 새롭게 발견할 때 시가 태어난다.
"신석정 시인은 '내 가슴 속에는 하늘로 발돋음하는 짙푸른 산'이 있다고 했습니다. 내 가슴 속에 누적돼 있는 삼라만상이 나의 전 재산이고 이 재산으로 끊임없이 발전하고 사유하고 욕망하고 의욕한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관계의 발견인 셈이죠."
그런 점에서 시는 안과 밖이 계속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시간의 경계든, 공간의 경계든, 무엇이든 어떤 것을 결정짓는 가두리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가 양동이에 물을 받아 들고 가는 동안은 출렁출렁하죠. 우리의 생각도 그렇게 출렁출렁해야 좋은 시가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가두려고 해요. 시도 이렇게 끝나야지 완결이 될 것만 같다는 강박관념을 갖는 겁니다. 시에는 완결이 없습니다. 완결이 되는 순간 오히려 시는 죽어요."
대신 모든 시는 관계를 통해 설명돼야 한다. 시적 화자가 우월적인 위치에서 채근을 하기 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시인은 "좋은 시를 쓰는 사람은 그래서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 끝까지 잘 듣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현종 시인의 산문을 예로 들면서 도를 깨친 스승이 진리를 전할 때 제자의 귀에 대고 들릴듯 말듯 전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스승은 (진리를) 속삭였던 것은 너무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공중에 흩어져버릴까봐 조심스러운, 경외하는 마음이었던 겁니다. 이 일화는 시인이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겸손하고 낮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좋은 시는 채우기 보다는 비우는 것에 가깝다.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게으름.
"조지훈 선생이 게을러야 좋은 시를 쓴다고 한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여기서의 게으름은 세상의 번다한 것을 뜻합니다. 술 약속, 놀러갈 생각, 금전 거래 등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것이죠. 느릿느릿한 자연의 속도를 즐기고 있는 순간 바깥에 있던 내가 안쪽을 굽어다보게 되는 겁니다."
결국 고독한 시간을 잘 견디는 사람일수록 좋은 시를 쓸 수밖에 없다. 자신도 독방에서 혼자 울면서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다면서 자신을 붙들고 있는 리듬을 자꾸자꾸 생각해보게 된다고 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연은 흰 몇 마처럼 품이 넉넉했다. 앞으로도 시인은 따뜻하고 속 깊은 시를 새롭게 벼리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