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숙(전 CBS 전북방송 본부장)
탓티황옥 사건이 터지면서 '베트남 신부,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는 현수막 사진이 미 국무부 인신매매보고서에 실렸다는 소식은, 아프다. 한국으로 시집 온 스무 살 앳된 신부가 일주일 만에 재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가는 영정사진이 페이스북에 뜨자, 사람들은 수백 개의 댓글을 달며, 가슴 아파 했다. "미안해요.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metalms", "우리 누이들도 해외에 와서 이러던 시절이 있었지요.-aircourt" "제발 그러지 맙시다. 이주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 우리 한인동포들도 똑같이 대못이 박히게 됨을 꼭 기억해주십시오.- Daniel" "이주민, 그들도 이제 한국인입니다. 우리 국민. -김성순". 지난 한 해에만 4만 3천 명의 한국 남성이 외국인 신부를 맞았다. 전체의 13%가 넘는다. 다문화 가정 18만, 귀화 한국인이 백만 명이 넘는 우리도 이제 다문화사회가 되었지만 문화적 개방성은 58개국 중 52위다.
사실, 한국 역사에서 국제결혼 1호는 김수로왕과 허황옥이다. 사학자들이 그토록 많이 논한 가야의 초대 왕비 허황옥 스토리는 신화적 각색이지만 역사서를 보면, 실존인물로 묘사돼 있다. 가야가 건국된 6년 후인 서기 48년, 붉은 돛을 단 배를 타고 김해 앞바다에 나타나 장막을 치고 기다리던 젊은 왕 수로에게 스스로를 나이 16살의 아유타 공주라고 소개한다. 북방 유목민족 출신으로 추정되는 김수로 집단과 남방 인도 출신의 허황옥 집단이 현지토착 세력과 힘을 합치는 역사적 순간이다. 가야의 높은 문화수준 흔적들은, 다른 민족의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임으로써 꽃피웠을 것이다. 10명의 자식을 낳으며 가야를 함께 이끈 허황옥은, 김해 허 성씨의 시조가 되고, 2천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나는 그녀의 62 세손이 되는 셈이다. 한반도 역사에는 수천 년 동안 중국·일본·몽골·베트남·아랍 등 다양한 귀화인들이 등장했다. 특히 고려 초엔 인구의 10%가 귀화인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탓티황옥은, 5남매 중에 셋째다. 낙후된 베트남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9학년을 마치고 호치민으로 돈을 벌러 나갔다가 어느 날 한국인과의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마흔 일곱 살 한국인 신랑은 호치민에 찾아가서 결혼 비용으로 200달러를 지불하고, 결혼 후 처가를 방문해 500 달러를 지참금으로 지불했다고 들었다. 가족의 밥그릇을 줄여준다며 대만으로 시집 가 어렵게 사는 큰언니를 보며, 어쩌면 자신은 열심히 살아서 집으로 송금도 하며 효도하기를 기대했을 지도 모르겠다. 탓티황옥의 영정사진은 참 예뻤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꽃다운 스무 살 어여쁜 처녀였다. 삐뚤거리는 글씨로 남편에게 '사랑해요'를 연습하던 그녀에게 정신질환이 도진 남편이 흉기를 들고 덤볐을 때 두렵고 무서웠을 것이다. 아직 한국말도 할 줄 모르던 그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남편의 팔을 잡으며 그녀의 엄마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녀의 모국어로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았을까.
서울에 있는 대표적인 이주한국인 상담센터에는 하루에 4건, 한 달에 약 100건 정도의 인권문제 상담이 들어오는데, 30%가 가정폭력으로 남편과 가족들의 구타를 호소한다. 그런데 실상 이들이 더 힘들어 하는 건 '돈 내고 너를 데려왔다'는 인격에 대한 모독이란다.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여성들의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묵묵히 들고 서있던 피켓 중에는 "우리도 인간이야, 때리지 마라"는 글씨가 또렷하다. 인도의 스무 살 공주 허황옥도, 베트남의 어여쁜 신부 탓티황옥도... 왜 이름이 똑같이 황옥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에 꿈을 품고 바다를 건너 한국에 왔을 것이다. 달랐던 건 그들 서로가 아니라, 그녀들을 맞이한 그녀들의 남자들과 속한 사회가 아닐까.
기회를 선용하지 못하면 위기가 된다. 탓티황옥의 유해봉송 길에 동참했던 한 국회의원은 이제 '다문화가족청'을 심각하게 고려해 볼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금부터 국제결혼을 하는 이주여성에게 우리나라 남성의 신상정보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혼인이나 범죄경력, 정신질환 여부 등이 포함되고, 정상적인 혼인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외국인 배우자의 비자를 발급하지 않겠단다. 이윤만 앞세운 일부 국제결혼 중개업소에 대한 단속도 강화하고 비영리단체가 주도하는 국제결혼중개기관의 설립도 검토하고... 이제 시작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지구촌에 대한 예의와 기본이 없다.
/허미숙(전 CBS 전북방송 본부장)
▲ 허미숙 전 본부장은 김제 출신으로 CBS에 소속돼 33년 동안 저널리스트로 일했으며, 한국방송80주년을 기념해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저널리즘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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