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군산대 교수)
지난 세기 한국경제에는 여러 발전축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단연 영향력을 가졌던 것은 서울에서 부산을 잇는 경부축이었다. 1905년 개통된 경부선과 1970년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회간접자본시설이었던 셈이다.
발전축에 대한 논의는 국내외 경제사회의 변화에 따라 계속된다. 근래에는 개방형 국토축과 경제권역으로 요약되는 제4차국토개발계획 수정안이 있었다. 이후 현정부 출범과 함께 기초생활권과 내륙의 광역경제권 토대 위에 해안을 종합적으로 묶고 국경을 넘는 글로벌 초광역권의 발전축으로 다시 조정되었다.
그렇게 보면 전라북도는 호남광역권에 놓여 있으면서 새만금-서해안 발전축을 통해 국제적으로는 환황해 동북아경제권에 속해있다.
지난 시기 경부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발전축에서 이제 새만금을 비롯한 해안벨트를 묶고 국경을 초월하는 동북아 경제축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글로벌 산업발전축의 중심에 전라북도가 위치해 있다.
새만금-서해안의 시대, 전라북도 공간구상의 핵심은 무엇일까? 이는 동부산악권과 중부 내륙을 묶되, 새만금의 탯줄인 금강, 만경강, 동진강과 바다를 아우르는 입체적인 구성이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대륙을 염두에 둔 글로벌 연계와 확산이 중요할 것이며, 그 경우 서해는 더욱 중요하게 부각된다.
잘 아는 것처럼 한반도의 서쪽, 즉 중국과 연해있는 바다를 서해 혹은 황해라 한다. 황해는 국제 통용어이고 서해는 한국사회에서 즐겨 쓰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서해안시대에 대한 주창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부상이 확인되면서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전라북도의 발전에서 서해는 어떠한 의미이고 그 핵심은 무엇인가?
우선 서해는 동아시아 역사 발원 이래 생명체 유지를 위한 에너지원이었다. 또한 동북아시아 인간정신의 외연을 풍부하게 확대시킨 문명의 원천이었다. 서해를 역사적 매개체로 하여 수많은 정치적 사회집단이 성쇠하였고, 산업과 경제가 발전했으며 문화의 교류와 상호 수용이 이뤄져 왔다. 그만큼 서해는 항상 물질문명의 집산이자 문화의 출입구였던 것이다.
서해를 통해 이루어진 국경을 넘는 해양문화교류와 수용 역시 중요하다. 멀리 신의주와 중국의 단동, 대련에서 시작하여 천진과 연대, 청도는 물론, 인천에서 군산을 거쳐 부안과 고창에 이르는 서해는 동북아의 지중해 같은 내해이기 때문이다. 역사과정에서 산업경제 뿐 아니라 사람과 문화와 물건의 이동이 빈번했던 곳이었음도 주목해야 한다. 즉 서해가 축적해온 물적교류(물류)와 인적교류(인류) 및 문화교류(문류)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해양자원은?인접?국가의 분쟁?대상이?될?정도로 국가의?경제력에서?차지하는?비중이?크다.?해양을?둘러싼 갈등의 증폭은?독도를 비롯한 한일간?영유권?분쟁에 잘 나타나 있으며, 그 사정은 서해의?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남북한의 긴장지대로 존재하고 있는 서해의 국제정치적 의미와 쟁점도 중요하다. 나아가 북한과 중국간 영해 설정과 군사·경제·전략적 협력에 관한 부분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요컨대 서해에 대한 총체적이고 학제적인 접근과 함께, 물질문명의 집산지였고 문화교류의 출입구였으며 동북아의 교차점이자 내해라는 지경학적 위상을 내륙과 연계시켜 재인식해야 할 때라 생각된다. 서해에 대한 면밀한 재검토 위에서야 비로소 전라북도의 발전축과 공간구상에 대한 큰 그림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김민영(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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