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용(편집부국장)
어렵고 번잡할수록 한가로움이 그리워진다. 일상을 벗어나 여유를 즐기는 데는 스포츠만한 게 없다. 14년 전 애틀랜타 올림픽때 전북 출신 선수끼리 만난 배드민턴 결승 경기를 떠올리면 지금도 즐겁다. 혼합복식의 박주봉과 김동문이 그 주인공이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끼리, 그것도 전북의 선후배 선수간(전주서중-전주농고) 결승서 만날 것을 예상이나 했겠는가.
당시 전북 체육계에서는 김동문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미 셔틀콕의 황제라는 칭호를 받고 있었던 박주봉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로 여겨진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내막도 있었다. 박주봉이 대학진학 과정에서 혼자 살기 위해 동료와 지역 체육계를 배신했다(?)는 인식이 그것이었다.
아무튼 박주봉은 그 올림픽에서 후배에게 왕관을 물러주고 영국으로 훌훌 떠났다. 그 후 말레이시아 코치에 이어 2004년부터 지금까지 일본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중간에 잠시 국가대표 코치직을 맡기도 했지만 해외서 더 지명도를 높였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박주봉에 대한 전북 체육계의 인식이 부정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한 분야에서 황제라는 칭호를 받을 만한 인물이 우리 지역에 몇이나 될까.
이명박 정부 들어 장차관과 정부 투자기관 이사장 자리, 검경 등 핵심 권력의 자리에 전북 출신 발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도민들의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인재가 없는 것인지, 인재가 있어도 몰라주는 것인지는 더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전북 사회에서는 지역의 인물을 키우고 아낄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장차관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장차관이야 정치적 선택의 문제여서 자의적일 수 있지만, 전문 분야에서는 우열은 실력으로 드러난다.
다시 박주봉으로 돌아가보자. 그가 누구인가. 서울 올림픽 시범경기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을 비롯, 국제대회 72회 우승으로 이 부문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2001년에는 국제배드민턴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그의 명성을 좇아 주봉라켓 등이 나왔고, 한때 동남아시아에선 '주봉버거'가 대단한 인기를 끌 정도였다 한다. 주봉의 이름을 딴 배드민턴대회가 매년 경기도를 비롯, 대구 등 여러 곳에서 열린다. 80~90년대 활동했던 그를 잊지 않고 팬클럽 인터넷 동호회가 만들어져 그의 신기에 가까웠던 기량을 지금껏 기억하고 사랑하고 있다. 오히려 전북에서 그의 존재가 덜 빛나지 않나 할 정도다.
배드민턴 동호회가 전국적으로 활발하다. 전북에서도 동호인 수가 몇 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전주시내에만 50개 가까운 클럽이 활동하고, 공설 체육관에 학교강당, 사설 구장까지 문전성시다.
이제 와서 굳이 박주봉을 새롭게 재조명하자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배드민턴계에서는 이미 신화이니까. 다만 그의 명성을 활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일반 사람들은 전주시에서 운영하는 배드민턴 전용구장이 어디인지 모른다. 그곳에 '주봉체육관'이라는 이름을 붙였어도 그럴까. 박주봉이 쓰던 라켓이나 옷, 신발 등의 애장품과 활동상을 담은 사진 몇 장을 곁들이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다른 어느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차별화가 가능하다.
관광자원화를 멀리서 찾으려 말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하나씩 만들어보자. 기왕의 시설에 이름만 잘 붙여도 훌륭한 자원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오늘은 주봉체육관서 만납시다.'훨씬 폼나지 않나.
/김원용(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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