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버라이어티채널 tvN은 새 드라마 '기찰비록'의 제작발표회를 17일로 준비했다가 부랴부랴 13일로 당겨 치러야 했다.
출연 배우 중 한 사람이 17일 다른 드라마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을 바꾼 것이다. 문제(?)의 드라마는 KBS 2TV 청춘사극 '성균관 스캔들'이었으며, '기찰비록'의 제작발표회 일정을 바꾼 주인공은 청춘스타도 아닌 중견 연기자 김갑수(53)였다.
tvN 홍보팀은 "김갑수씨가 '성균관 스캔들'의 제작발표회에도 참석해야 해서 '기찰비록'의 제작발표회 일정을 바꿔야 했다"고 말했다.
이 해프닝은 최근 안방극장 중견 연기자의 파워가 새삼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김갑수는 주인공도 아니지만 두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무게감 주는 '어른' 역을 맡아 '귀하신 몸'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대접은 최근 그가 출연한 '추노' '신데렐라 언니' '그들이 사는 세상' 등 일련의 드라마 속 캐릭터가 인기를 끈 데서 비롯된다.
한동안 청춘스타 섭외에 혈안이 된 방송가가 중견 연기자들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몫을 늘리는 방향으로 스토리를 수정하기도 하고, 애초에 청춘스타를 배제한 채 타깃층을 높인 기획으로 중견 연기자를 두루 기용하기도 한다.
현재 최고 시청률을 기록 중인 KBS 2TV '제빵왕 김탁구'를 비롯해 SBS TV '자이언트'와 '인생은 아름다워' '이웃집 웬수', MBC TV '황금물고기'와 KBS 1TV '전우' 등의 드라마는 모두 '중견의 파워'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드라마다.
연기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들이 펼치는 연기의 향연이 눈부시다.
◆정보석ㆍ정성모ㆍ전인화..'섬뜩한 악역 카리스마' = 매주 수-목요일 같은 시간에 방송되는 '제빵왕 김탁구'와 MBC TV '로드 넘버원'의 시청률은 19일 기준, 43.7%와 4.8%로 하늘과 땅 차이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로드 넘버원'이 지나치게 청춘스타 위주의 스토리라는 점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제빵왕 김탁구'는 청춘스타에 기대지 않고, 어른들의 이야기에도 고루 힘을 실어줌으로써 남녀노소를 사로잡았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악역을 맡은 정성모(54)와 전인화(45)의 폭발할 것 같은 팽팽한 연기력이 극의 긴장감을 책임지며 매회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자이언트'에서는 정보석(48)의 신들린 듯한 연기가 연일 화제다. 바로 전작인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일그러진 야망에 사로잡힌 악인을 연기하는 그는 매회 섬뜩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스토리의 중심에 서 있다.
◆전광렬ㆍ박상원ㆍ최수종..'묵직한 존재감' = '제빵왕 김탁구'의 전광렬(50)과 '황금 물고기'의 박상원(51)', '전우'의 최수종(48)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주인공으로서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특히 박상원은 극중 30여 살 어린 조윤희와 결혼하며 '꽃중년'의 대명사로 떠올랐고, 최수종은 전쟁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나이를 잊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전광렬은 등장 자체가 드라마의 품위를 책임지고 있고, 같은 드라마 속 장항선(63)도 '팔봉선생'으로서 모든 이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며 무게를 더한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김해숙(55)과 김영철(57) 역시 주인공 가족의 선장으로서 다사다난한 가족사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튀지 않으면서도 충실히 소화해 시청자를 편안하게 해주며, 같은 드라마의 윤다훈(46)은 매회 '원맨쇼'의 최고봉을 보여주며 웃음을 책임지고 있다.
◆장미희ㆍ김상중ㆍ유호정ㆍ손현주..'중년의 로맨스' = 중견 연기자들의 활약으로 요즘 드라마에서는 '중년의 로맨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장미희(52)의 활약이 화제다. 철없는 재일동포 재벌2세 역을 맡은 그는 연하의 부하 김상중(45)과의 연애로 얼굴에 꽃이 피었다.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한 장미희의 천진난만한 연기와 그에 장단을 맞추는 김상중의 모습이 청춘의 연애 못지않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웃집 웬수'는 아예 이혼한 중년 부부의 이야기다. 손현주(45), 유호정(41), 김성령(43)이 이혼 혹은 사별 이후에 찾아온 두 번째 사랑 앞에서 울고 웃는 연기를 펼친다. 여기에 김미숙(51)과 홍요섭(55) 커플의 사랑 이야기도 드라마에 훈훈함을 더한다.
◆연륜과 경륜의 시너지.."연기가 맛있다" = 이들 중견 연기자는 연륜과 경륜의 시너지를 통해 진정한 '관람의 재미'를 선사한다.
'제빵왕 김탁구'의 정성모는 "전광렬, 전인화씨와 셋이서 호흡을 맞추는 게 굉장히 재미있다. '우리끼리 연기하면 참 맛있지 않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며 "서로의 연기와 연기가 부딪히는 과정에서 긴장감이 팍팍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제빵왕 김탁구'는 시청자가 각자 연령별로 눈을 둘 만한 연기자가 고루 등장한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아역부터 청춘스타, 중견 연기자와 노년층까지 골고루 조화롭게 섞여 이야기를 끌고 가니 폭넓은 시청층을 사로잡는 것"이라며 "특히 중견 연기자들이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니 힘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제빵왕 김탁구'와 '인생은 아름다워'를 제작하는 삼화네트웍스의 신상윤 상무는 22일 "톱스타를 캐스팅한다고 드라마가 잘되는 시대는 끝났다. 탄탄한 대본과 실력 있는 연기자들의 조합이 중요한데 특히 중견 연기자들의 뒷받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빵왕 김탁구'의 경우 젊은 연기자들의 경험이 많지 않아 더욱더 중견 연기자를 신경 써서 캐스팅한 드라마"라며 "중견 연기자들이 젊은 연기자들을 가르치며 극을 이끌어가기 때문에 그들의 몫이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처럼 중견 연기자의 파워가 세지면서 겹치기 출연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앞서 거론한 김갑수가 대표적인 케이스로, 그는 최근 동시간대 방영되는 두 드라마에 출연한다. 쉼없는 러브콜에 응하다 본의 아니게 시청자에게 '결례'를 범했다는 것.
이응진 KBS 드라마국장은 "중견 연기자 캐스팅에도 유행이 있기 때문에 시기마다 제작진이 선호하는 연기자가 분명히 있다"면서 "하지만 전체 드라마 편성을 볼 때 같은 연기자를 계속 캐스팅하는 것은 다양성을 해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특정 연기자의 중복 캐스팅이 이뤄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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