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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태풍 이후

김병종 (화가, 서울대 교수)

태풍 "곤파스"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수십년씩 된 가로수가 뽑혀 나가고 전신주가 동강 나기도 했다. 뉴스에 보니 고종의 칠백년 넘은 향나무가 부러지기도 했다고 한다. 작업실 마당의 참나무도 우지끈 뚝딱! 하는 소리와 함께 한밤중에 부러져 버렸다. 세찬 비바람 소리에 일어나 창 앞에 섰지만 휘몰아치는 광풍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전날 태풍의 소식이 있었지만 여름의 뒷끝이면 의례 오는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던 것인데, 그 위세는 상상 이상이었다. 아침에 보니 작은 마당이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흡사 점령군이 쓸고 지나간 것처럼 참담했다. 그중에도 하늘을 가리우며 나뭇잎을 빽빽이 달고 있던 수십년된 참나무가 동강난 채 쓰러져 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참나무가 넘어진 자리에 파란 하늘이 보였고 그 아래 키 작은 소나무가 힘겹게 서있는 모습도 보였다. 참나무는 마당의 주인 격 이여서 몇 그루 나무는 그 아래서 주군을 모시는 부하들처럼 올망졸망 서 있었는데, 참나무가 넘어지고 나니 비로소 키 작은 몇몇 나무들의 존재가 제대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혼자서는 힘겨워 근처 농원에서 사람을 불러 넘어진 참나무를 자르는데 연세 지긋한 그 분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참나무 참 잘 쓰러졌다."

 

이 무슨 악담인가 싶어 "잘 쓰러지다니요?" 했더니

 

"잘 쓰러지지 않았다구요?" 하고 되받는다.

 

그 분의 말인즉슨 햇빛을 가리운 참나무가 태풍에 넘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하늘이 열려졌고 소나무며 작은 나무들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참나무 아래 비비 꼬이며 힘들게 서 있는 소나무를 잘 살리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만약에 이번 태풍에 참나무가 쓰러져 주지 않았던들 소나무와 다른 몇 몇 나무들은 그 그늘에 가려 세월이 가도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과감하게 참나무 쪽을 감벌해 주어야 하는데 태풍이 대신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나무 잘 쓰러졌다고 했다는 것이다.

 

고개가 끄덕여 졌다. 그분과 땀을 흘리며 한나절 손을 보고 나니 참담했던 정원은 새로운 모습으로 정돈이 되었다. 늘 서 있던 키 큰 참나무가 사라지게 되어 섭섭하긴 했지만 햇빛이 환히 비치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더구나 영양실조처럼 보이던 작은 소나무는 그 햇빛 속에서 모처럼 제대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태풍이 언제 있었냐는 듯 새도 나아와 지저귀고 있었다. 모든 것을 쓸어 가버릴듯 한 태풍의 위세는 무서웠고 그 바람에 손실도 있었지만 가만히 보니 태풍으로 얻어진 것도 많았다. 햇빛과 하늘을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소나무며 작은 나무들까지 얻게 되었다. 오래 방치되어 있던 마당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네 인생에도 어느 날 태풍이 몰아칠 수 있다. 그것은 때로 사나운 기세로 우리가 가진 것들에 손실을 입히며 절망과 두려움으로 몰아간다. 벼랑 끝에 몰린 것처럼 캄캄하여 한발짝도 앞으로 내디딜수 없을 것처럼 느끼게도 한다. 그러나 자연의 태풍처럼 인생에 불어오는 태풍을 잘 견디면 뜻밖의 선물을 주고갈 수도 있는 것 같다. 삶의 지혜와 겸손 그리고 감사의 미덕 같은 것이 바로 태풍이 인생에게 선물로 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닐까 싶다. 태풍도 그 섭리와 의미를 되새김질 해보라. 그리고 그 속에서 감사를 발견하라.

 

태풍 "곤파스"가 일깨워준 것들이다.

 

/ 김병종 (화가,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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