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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문제 이분법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친일 행위를 한 분들은 적어도 깨끗이 사과는 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친일 문제를 단순히 누가 옳고 그르다는 식의 이분법으로 그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영화 '계몽영화'를 연출한 박동훈 감독이 최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지난 16일 개봉해 상영 중인 '계몽 영화'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족 삼대의 이야기를 담은 시대극이다.

 

자녀교육 때문에 미국에 있던 태선(오우정)은 오빠로부터 아버지 학송(정승길)이 위급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전화를 받고 귀국한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태선은 소싯적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씁쓸함에 젖어든다.

 

영화는 친구까지 배신하며 일본 회사에서 승승장구한 길만(이상현), 그리고 그의 부(富)를 그대로 세습한 학송, 또 중소기업 사장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학송의 아들 태한(배용근)의 모습을 통해 왜곡된 한국 근현대사의 풍경을 세밀히 보여준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발전을 했지만, 국민의 행복지수는 높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 비리도 많이 터지는 편이죠.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친일문제까지 도달하게 됐습니다."

 

그는 친일파 활동을 한 이들이 광복 후에도 기득권을 누리는 점은 우리 역사의 뼈아픈 대목이라고 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친일 문제를 단순히 '친일행위를 했고 안했고'의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고 한다.

 

"'우리 조상은 친일행위를 하지 않았으니 나는 괜찮아'라는 식의 인식은 피하고 싶었어요. 우리 모두가 여전히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 즉, 친일이라는 고름을 안고 살아간다는 전제로 영화를 시작했습니다."

 

영화에는 그런 고민이 담겨 있다. 친일파 정길만은 독립운동을 하는 친구를 결국 배신하지만, 평소 친구의 노모를 힘껏 보살핀다. 길만의 아들 학송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비행기 소리만 들려도 폭격의 공포감에 이성을 잃는 정신적 공황에 시달린다. 두 인물에 대한 약간의 온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박 감독은 "그들이 온당한 일을 한 건 아니지만 동정할 만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부분을 영화에 반영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소녀X소녀'로 지난 2007년 장편 데뷔한 박 감독은 '계몽영화'가 두 번째 장편 영화다. 애초 2005년에 찍은 22분짜리 단편 '전쟁영화'의 내용에 살을 붙여서 완성한 작품이다.

 

영화 촬영은 쉽지 않았다. 제작비는 1억4천만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물이다 보니 돈 들어 갈 곳이 많았다. 다양한 소품을 사용해야 했고, 고증에도 신경 써야 했다.

 

"드라마를 보다가 배경이 70년대인데 220V 콘센트가 나오면 현실감이 떨어져 나중에는 전혀 집중이 되지 않더라고요. 영화를 찍으면서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고증에 무게 중심을 두었습니다."

 

박 감독은 차기작으로 193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을 계획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윤곽이 잡힌 건 아니지만, 당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살았는지 정확하게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계몽영화를 준비하면서 그간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일제강점기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됐죠. 조사 과정을 통해 당시의 모습이 지금 한국사회의 현실과도 분명 통하는 구석이 있다고 느꼈어요. 당시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한국사회를 투영하고 싶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욕망과 지금 사람들이 느끼는 욕망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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