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5 14:19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방송·연예
일반기사

김장훈 "故김현식, 절망 속 희망 토해낸 형"

32세에 요절한 가수 고(故) 김현식의 20주기에 맞춰 그의 '사촌 동생'으로 한때 알려질 만큼 절친했던 후배 김장훈이 헌정음반 '레터 투(Letter to) 김현식'을 발표한다.

 

김현식의 독려로 가수 데뷔를 했고, 그의 음악적 영향을 받은 김장훈에게 이번 음반은 20년간 가슴에 담아둔 얘기를 하늘에 전하는 편지다. 김장훈은 지난달 프라하로 떠나 체코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김현식의 노래 11곡에 대한 녹음작업을 했다.

 

김장훈은 최근 인터뷰에서 김현식이 잊혀져가는 아쉬움부터 털어놓았다.

 

"오는 12월이면 비틀스의 존 레논이 사망한지 만 30년이 됩니다. 외국에선 존 레논의 사후 30주기를 앞두고 벌써부터 그를 기리는 음반과 서적이 잇따라 출시되는데 현식이 형을 조명하는 움직임은 없어 아쉬웠죠. 형이 잊혀지는 게 싫었어요."

 

김장훈은 김현식의 노래를 하루도 안 들은 적이 없다. 미니홈피에도 김현식 노래가 자신의 노래보다 더 많이 깔려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어머니가 절친한 친구여서 어려울 때는 서로의 집인 상도동과 서교동을 오가며 함께 살기도 했다.

 

김장훈은 "형은 사는 모습이 노래로 나온다는 걸 가르쳐준 사람, 내 팔자를 세게 만들어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음악 행보에선 김현식이란 이름 석자가 빠질 수 없다. 그로 인해 그는 한때 김현식의 아우라를 거부하려 했던 때도 있었다.

 

"형이 죽기 전 지인들에게 '내 동생이 있는데 노래 잘하니 음반을 내주라'고 했어요. 또 제게 오디션을 보라며 여러 밴드도 소개해줬죠. 그러던 중 1990년 11월 형이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 봄 제가 다니던 경원대학교로 서울음반 관계자가 찾아왔어요. 형과 밴드를 했던 분인데 '현식이가 추천했다'며 제 데모 카세트 테이프를 가져갔죠."

 

1년 계약금 600만원, 장당 인세가 200원인 파격적인 조건에 그는 1991년 가을 첫 음반을 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인기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가 깔리면서 김현식 유작 음반이 30만장이나 팔려나갔다.

 

"'내 사랑 내 곁에'가 떴는데 부를 가수가 없었어요. 당시 신문 기사에 제가 김현식의 사촌 동생인 양 소개되자 방송과 시상식에서 이 노래를 불러달라는 제의가 왔죠. 하지만 거부했어요. 형의 죽음을 딛고 올라서는 게 싫었거든요. '신인 주제에'란 질타를 받으며 전 '잠수'를 탔고 이 일로 서울음반과도 결별했어요. 그리고 1996년 3집이 나올 때까지 방송사와 '전쟁'을 했어요."

 

김장훈은 김현식과 함께 했던 시간들, 마지막 만남의 에피소드도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지난 기억을 더듬듯 많은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들려줬다.

 

"형이 떠나기 5-6년간 같이 살다시피 했어요. 1986년 형은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한남동에서 연습했어요. 오후 4-5시부터 형의 연습을 구경했고 끝나면 같이 소주를 마시거나, 형이 일하는 업소에 따라갔어요. 그때 형이 좀 외로웠나봐요. 꼭 저를 데리고 다녔어요. 간경화로 고통받으면서도 소주 한모금에 바나나 한입을 베어물던 형의 모습이 생생해요."

 

그는 1990년 초가을 만남이 김현식을 본 마지막 기억이라고 했다.

 

김장훈은 "그날 형과 4차에 걸쳐 술을 먹었는데 마지막에 호텔 나이트 클럽에 갔다"며 "형이 갑자기 무대로 올라가 기타 대신 드럼에 앉았다. 무반주로 쇳소리를 내며 '비처럼 음악처럼'을 부르더라. 노래 마지막에 드럼 스틱을 내려치는데 노래가 아니라 절규였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충격적인 라이브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곳에서 나와 거리를 걷던 형이 '성질이 안 맞아도 소개해 주는 곳에서 해봐야지, 너 좋아하는데로만 하냐'고 나를 혼냈다"며 "가벼운 몸싸움을 했는데 형이 갑자기 땅을 보고 침묵했다. 마지막 들은 말이 '있을 때 잘해 이 XX야"였다. 느낌이 이상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김장훈은 김현식과 두달 가량 연락을 안하고 지내던 중 어머니로부터 부고를 들었다. 너무 당황스러워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고 한다. 만감이 교차했던 그는 '언젠가 때가 오면 형을 위해 뭔가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이 그때라고 했다. 내년 자신의 20주년 음반에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려던 로망을 김현식의 음반으로 돌렸다.

 

작곡가 이승환이 편곡하고 60인조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빚어낸 김현식의 음악은 거칠고 공격적인 록 사운드가 클래식의 따뜻한 선율로 온화해졌다. 록에 없는 선율과 클래식에 없는 비트감이 상호보완 됐다. 타이틀곡은 '비처럼 음악처럼'이다.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비처럼 음악처럼'은 발라드, '봄여름가을겨울'은 하드록, '이별의 종착역'은 블루스, '추억만들기'는 포크이니 한 가수의 음악치고는 너무 다양해 한곡한곡 연주할 때마다 즐거워했어요. 미국 뉴욕에서 믹싱과 마스터링 작업을 했는데 엔지니어는 '매지컬(magical) 음반'이라더군요."

 

김장훈은 "'추억만들기'는 초등학생처럼 담담히 불렀다"며 "'여름밤의 꿈'은 월드뮤직, '사랑했어요'는 관현악곡, '봄여름가을겨울'은 메탈, '변덕쟁이'는 디스코로 편곡해 노래했지만 오케스트라 덕에 사운드의 통일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현식에게 노래를 제대로 들려준 적이 없다는 그는 이 음반은 김현식에 대한 '리스펙트(respect) '의 의미도 있지만 개인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그에게 '김현식이 왜 위대한 가수인지' 물었다.

 

"형보다 고음이 더 잘 나오는 가수는 많아요. 하지만 형은 노래를 가슴으로 불렀죠. 본능적으로 가슴 속에 있는 걸 토해내는 게 노래인데 그런 점에선 세계 최고예요. 목 상태가 나쁜 상황에서도 감동을 준 사람이 바로 형이죠.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했으니까요."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