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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생활 속의 스승들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공자님 말씀 중에 참 맞다 싶은 것이 많지만 그중에 유독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라는 말씀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닌게 아니라 살다보면 뜻밖의 장소와 낯선 시간 속에서 마음의 사표로 삼음직한 이들을 만나게 된다.

 

몇 년 전부터 주말이면 퇴촌에 자주 가는데 거기서도 나는 마음의 스승들을 만나게 되었다. 언젠가 식사자리에서 그런 고백을 했더니 본인들은 정색을 하며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나는 마음속에 이미 퇴촌의 벗들을 스승의 반열에 두고 있다. 내가 퇴촌의 스승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전남 곡성을 고향으로 둔 한 사십대의 젊은이들인데 세 사람 모두 고건축과 고미술 쪽에 종사하고 있고 서울 근교의 새로운 고미술 거리로 형성되고 있는 도마 삼거리에서 퇴촌까지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다.

 

원래 곡성은 아주 작은 고을인데 유난히 고미술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이다. 누누누구하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일만한 사람들이 그 지역 출신이다. 이 퇴촌 삼인방은 그러나 말쑥한 고미술상들이 아니라 벗어부치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점이 이채롭다. 못하는 일이 없을 정도다. 이를 테면 한옥 짓는 일 또한 이론으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기에도 능한 것이다. 직접 뛰어들어 나무를 다듬고 땅을 파며 석축을 놓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 퇴촌 삼인방은 얼마 전 눈썰미와 손이 좋은 목수팀과 함께 '함양당(含陽堂)'이라는 날아 갈듯한 한옥 한 채를 지어냈다. 한 채의 조선집이 지어지는 동안 곁에서 홀로 감동적인 장면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이를테면 일이 모두 끝난 뒷자리를 아무리 어두워도 셋 중에 누군가는 반드시 남아 뒷정리를 한다든지, 한 사람이 몸살이라도 날라치면 다른 두 사람이 흠집 없이 그 사람 몫을 해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누가 보던말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본인들의 집을 짓는대도 그보다 더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집이 지어지고 나서도 수시로 와서 둘러보고 가곤 한다. 이 세 사람 중에는 이론에 더 밝은 쪽이 있고 실기에 더 강한 쪽이 있어서 서로 짝을 잘 맞추어 나간다는 것도 특징이다. 실기 중에는 목공일이나 보일러에서부터 벽돌쌓기며 기와 잇기에 이르기까지 두루 만능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가지에 정통해서 일가를 이룬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들의 특징은 이러한 자신들의 장기나 실력을 별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가 보기엔 대단한 실력인데도 불구하고 한사코 감추려 드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의자며 침상 같은 것을 짜달라는 주문이 들어와도 꼭 받을 것만 받고 그만이다. 실력에 비해 너무 싸다 싶어도 더 받는 법이 없다. 아침부터 밤이 으슥하도록 일을 하고 집에 들어가 자고 나와서는 다시 일하기를 계속한다.

 

나는 서재에 이 퇴촌의 벗들이 만들어 준 의자를 쓰고 있다. 앉고 일어설 때마다 마음새를 가다듬게 된다. 이토록 견고하게, 이토록 정성을 다해 만들어준 의자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이나 축내고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언제 봐도 이 퇴촌의 세 친구는 늘 온화한 모습이다. 살다보면 간혹 서로 간에 의견충돌 같은 것도 있을 법 하건만 절대 그런 일이 없다. 늘 화기애애하고 정겨운 모습들이다. 생활의 매너리즘에 빠질 때마다 나는 퇴촌으로 가서 한나절 내내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돌아온다. 톱밥이 날아오르는 나무를 켜고 못질을 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모습들을 바라보면 내 스스로가 정화되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셔츠가 땀에 흠뻑 젖도록 일하고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노동의 신성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때로는 그들의 삶 자체가 등짝에 내리는 죽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이지 스승은 도처에 있다. 주말쯤에는 다시 퇴촌의 스승들을 만나러 갈 생각이다.

 

/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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