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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窓] 멋진 건배사로 한해 마무리를

엄철호(익산본부장)

회사원 김 모씨(43·익산시 영등동)는 요즘 틈만 나면 인터넷 검색 삼매경에 빠져들고 있다.

 

연말 송년 회식때 멋진 건배사 한 토막을 읊어보고 싶은 심사에서 김 씨는 오늘도 맛깔스럽고 멋스러운 건배사 찾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건배의 역사는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인들이 포도주를 즐겨 마셨는데 대치하던 카르타고군이 이같은 기호를 역이용했다. 마취제를 넣은 포도주를 로마 병사들에게 마시도록 해 전세를 뒤집은 것이다. 이후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술을 똑같이 따라 동시에 마시는 습속이 생겨났는데, 오늘날 건배문화로 이어졌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믿을 수 없는 역사적 유래에서 시작된 서양 문화의 산물 건배가 요즘에는 서로를 기원하는 의미의 뜻으로 변질돼 각종 모임에서 빠질수 없는 식순에 들어가 있다.

 

국가 정상들 간의 만찬에서부터 초등학교 동기들의 모임과 마을 계모임 등에 이르기까지 지금 우리사회는 자리를 불문하고 꼭 건배를 행하고 있다.

 

이런 건배문화속에서 건배사는 백미중에 백미다. 자리의 성격에 부합하면서도 재치있고 멋들어진 건배사는 연회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반전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배사가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건배사를 보면 온갖 구호가 난무하는 시류에 편승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성희롱 성 저질도 상당수에 이르면서 우리를 종종 혼란스럽고 난처하게 만든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반면 입을 잘못 놀려 화를 당한다고 해서 나온 '설화(舌禍)'란 말도 있다.

 

말이란 게 그런 거다. 득이 될 때도 있고, 독이 될 때도 있는데 요즘 '건배사'가 꼭 그런 모양이다.

 

청중을 확 휘어잡는 멋진 건배사가 있는가 하면 자칫 상황 판단을 잘못해 그만 '선'을 넘으면서 독을 바른 화살이 돼 돌아오는 건배사들도 참 많다.

 

최근 한 유명인사가 '오빠 바라만 보지 말고 마음대로 해'라는 의미의 '오바마' 건배사를 했다가 곤욕을 치른 사실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사건이다.

 

만일 그 건배사를 한 주인공이 오바마의 건배사 의미로 '오는 새해 바라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라고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면 설화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멋진 건배사를 했다고 칭찬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송년회가 붐을 이루고 있다. 회사, 동창, 동호회 등 각양각색의 모임이 연말 스케줄에 빼곡하다. 모임의 하이라이트이자 피할 수 없는 건배사 차례가 돌아왔다면 비록 짧은 한 두마디라도 정말 멋들어지고 맛깔스런 건배사 한번 던져보는게 어떨까.

 

고사리(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해합니다), 껄껄껄(좀 더 사랑할 껄, 좀 더 즐길 껄, 좀 더 배울 껄), 변사또(변함없는, 사랑으로, 또 만납시다), 사우나(사랑과 우정을 나누자),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중한 만남을 위하여), 사이다(사랑해요, 이생명 다바쳐, 다시 태어나도), 오징어(오래오래 징그럽게 어울리자), 119(1차만, 1가지 술로, 9시까지 끝내자), 원더걸스(원하는 만큼 더도 말고 걸러서 스스로 마시자), 통통통(만사형통, 의사소통, 운수대통), 개나리(계급장 떼고, 나이도 잊고, 릴렉스하게), 진달래(진실로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틀만 아프고 3일째 죽는다), 마당발(마주보는 당신의 발전을 위하여),해당화(해가 갈수록 당당하고 화려하게), 참이슬(참사랑은 넓게 이상은 높게 술잔은 평등하게)….

 

멋진 건배사는 술을 잘 마시자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잘 알아달라는 진심을 전하는 것이다.

 

/ 엄철호(익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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