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철호 (익산본부장)
공직사회의 인사 청탁 비리는 사실 뽑고 뽑아도 자라나는 독초(毒草)와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오죽했으면 "인사 청탁을 하면 패가망신(敗家亡身)을 시키겠다"고 말했겠는가. 그만큼 우리 공직사회에 인사 청탁이 만연하고 끈덕지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우리 공직사회는 아직도 끼리끼리의 자리 나눠먹기가 성행하고 있다. 이런 독초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것은 그릇된'네트워크 문화' 때문이다. 바로 지연(地緣)과 학연(學緣)을 기반으로 한 연줄 문화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댄 청탁은 기본적으로 능력과 성과를 무시한 채 음험한 뒷거래를 암시하며 공정한 순서를 '새치기'하게 만든다. 결국 이는 공직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부도덕한 범죄다. 그럼에도 짐짓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치부하는 잘못된 정서가 배어 나오면서 우리의 공직사회 인사청탁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익산시가 지난 31일 외부를 통해 인사를 청탁한 직원 4명의 명단을 전격 공개했다.(본보 3일자 1면 보도) 인사 청탁을 하는 공무원에 대해 명단 공개와 함께 불이익을 주겠다고 그동안 수차례 경고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에 그치자 결국 청탁자 명단 공개란 극약 처방 카드를 꺼내 들고 말았다.
설마 설마하며 명단 공개에 대해 그간 내심 회의적 시각을 보냈던 익산시 공직사회는 이날 인사 청탁자 명단이 실제로 전격 공개되자 나름대로 크게 놀라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인사 청탁자 명단이 공개되자 일부에서는 인사 불이익에 더해 공개 망신까지 준 것은 다소 지나쳤다는 지적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인사 청탁 문화를 돌아볼 때 과감하고도 필요한 조치였다고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사실상 이번 인사 청탁자 명단 공개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지난 22일 유기상 익산부시장은 시청 브리핑룸에 들러 기자들에게 2011년 상반기 정기인사에 대한 계획과 방침을 설명하면서 인사청탁자에 대한 불이익과 명단 공개 의지를 그 어느때 보다도 강하게 천명 했었다.
하지만 일부 공무원들이 '인사 때마다 나오는 상투적 발언' 정도로 인식했다가 이번에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거절하기 어려운 청탁이 얼마나 집요하고 많이 왔기에 이런 초강수 카드를 택했을까 나름대로 짐작해 보면서 그 고충 또한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지금까지 익산시는 인사철만 되면 청탁자를 공개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해 왔다. 하지만 실제 공개된 적은 없다. 인사 청탁자가 없을리 만무한데도 말이다. 아울러 이번 인사 청탁자 공개와 관련, 일부에서는 빙산의 일각이란 지적도 있다.
익산시 개청 이래 처음으로 인사 청탁자 명단이 전격 공개됐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지적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은 이날 현재까지도 인사를 청탁하는 공직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는것 아닌가로 해석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인사 청탁자 명단 공개를 계기로 이제는 일하지 않으면서 청탁에만 혈안인 자가 승진하거나 좋은 보직을 맡는 어처구니 없는 인사가 더 이상 단행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익산시 공직자들도 이번 명단 공개가 청탁 관행의 고리를 끊으려는 인사권자의 강한 의지 표현으로 여겨, 공직사회에 일대 경종을 울려주는 충격요법으로 삼아주길 당부한다.
더구나 익산시는 이번 인사 청탁자 명단 공개가 한 차례의 '홍보성 쇼'로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
청탁을 도려내는 서슬 퍼런 공직 기강의 칼날로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인사를 청탁하는 외부 인사(?) 명단까지 전격 공개해 보면 어떨까.
/ 엄철호 (익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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