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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체육 비사] ⑩전영술 대한검도회 심사위원장

한국 대표적 검도가문…국내·세계검도선수권대회 잇따라 석권 국내 위상 높여

검도인 전영술씨가 호구를 들고 정확한 가격 부위를 설명하고 있다. (desk@jjan.kr)

전북 체육은 한때 전국을 호령했지만 지금은 전국에서 앞선 종목이 많지않다.

 

전북의 발전 속도가 지체되면서 체육 부문에서도 전북이 다른 지역을 선도하기는 커녕, 뒤따라가기에도 바쁜 형국이다.

 

하지만 일부 종목은 전국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만한 굵직한 족적을 자랑한다.

 

검도가 바로 그런 경우다.

 

검도의 최고수는 8단으로 전국적으로 40여 명에 이른다.

 

이중 전북 출신이 5명이나 된다.

 

전영술, 변형준, 손창, 이기웅, 장홍균씨 등이 바로 그들이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검도 가문이 전북에 있고, 그 중심에 전영술(67) 대한검도회 심사위원장이 자리잡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검도가문을 꼽는다면 단연 전영술씨 집안이 첫손에 꼽힌다.

 

아버지인 전맹호(작고) 선생은 전북에 근대적 의미의 검도를 뿌리내리고 널리 전파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또 4명의 아들 모두가 검도 선수로서 전북 검도발전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큰아들 전영술씨는 60년간 검도를 하며 국가대표 선수와 국가대표 감독을 지냈고, 둘째 아들 전영태씨는 전주서중과 전주고에서 선수생활을, 셋째아들인 전영수씨는 서중, 해성고에서 선수로 활동했고, 넷째인 전영조씨는 서중, 해성고, 전북대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또한 큰아버지인 전승호(작고) 선생은 광복 당시 4단으로 한국인으로서는 4명밖에 안되는 최고단자중 하나였다.

 

그의 아들인 전영철씨 역시 검도인으로 우석대 초대 학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러면 전영술씨는 어떻게 검도와 인연을 맺게 됐을까.

 

50년대초 금산경찰서(당시엔 금산이 충남이 아닌 전북관할이었음) 검도사범이었던 아버지(전맹호)의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전 검도를 배운 전영술씨는 이후 평생을 검과 함께 하게된다.

 

55년 아버지가 전주경찰서 검도사범으로 자리를 옮기자 전영술씨는 전주초로 전학, 본격적인 검도 수업을 받게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초등학교 6학년때 전북대표로 출전, 경무대(청와대의 전신)에서 경기를 벌인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3월 25일) 기념일에 열린 대회에서 전영술씨는 학생부에 출전, 초등학생임에도 중학생과 고교생을 꺾고 기적처럼 1위를 차지한다.

 

고령의 대통령이 다가와 학생 전영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국내 검도발전을 이끌어야 한다"며 격려한 일화가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

 

이후 그는 선수로, 또 지도자로 전국대회는 물론, 세계검도선수권대회를 잇따라 석권하며 국내 검도의 위상을 반석위에 올려놓게 된다.

 

지금도 전국 검도계에서 전영술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검도로 인해 경찰 무도사범이 된 전영술씨는 순경계급장을 달고 출발한다.

 

하지만 경찰의 날이면 항상 전국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매년 특진을 했다.

 

순경에서 경장, 그리고 경사, 나중엔 경위가 된다.

 

검도 하나로 남들이 5년, 10년씩 걸려야 오를 수 있는 자리에 매년 승진하는 영예를 차지한 것이다.

 

전 씨는 국내에서 보다도 일본이나 대만 등 외국에 가면 더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

 

검도인으로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전북검도회 김동진 회장과 변형준 부회장은 "한번은 일본에 같이 갔는데 전영술 사범과 잠시라도 겨뤄보면서 지도를 받고 싶다며 무려 50여 명이 도장에서 공손한 자세로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외국에 나가보니까 전영술씨의 위상이 어떤가를 새삼 실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씨는 "다 오래전의 일"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는"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검도를 즐기고, 특히 초중고 학생들이 공부에 앞서 올바른 마음자세를 배웠으면 좋겠다"며 "정확하게 60년간 검도를 하면서 힘든 때가 많았지만 아무런 후회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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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병기 bkweegh@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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