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건을 탐정과 조수가 계속 해결하는 거죠. 캐릭터는 변하지 않고 액션이 있는 미스터리로 시리즈를 만들고 싶어요. '007' 같은 느낌으로요. 열 몇 편씩 가면 좋죠. 꿈은 그렇게 키우고 있어요. 국내에서 시리즈물은 3편 정도하고 수명을 다하는 게 많았는데 2편을 하고 나서 또 반응을 봐야죠."
지난달 개봉해 500만 관객을 향해 질주 중인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제작사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는 최근 연합뉴스와 만나 '조선명탐정'을 시리즈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
이 영화는 어딘가 허술한 구석이 있는 탐정(김명민)과 그를 돕는 개장수(오달수) 캐릭터가 돋보이는 코미디로 충분히 2편이 나올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에필로그에서 주요 캐릭터가 다시 만나도록 한 것이나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라는 부제를 단 것은 2편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기획할 때부터 시리즈로 할 생각이었어요. '흠흠신서'에서 보면 정약용이 이 고을에서 사건을 해결하고 저 고을 가서 또 다른 사건을 해결하죠. 그런 것에 지금 시대와 비슷한 것을 잘 섞을 수 있겠죠. 현실에서 관객이 울분이 있는 사건을 과거에서 탐정이 해결해주는 겁니다."
그는 "1편 시나리오를 쓴 작가에게 지난해 여름부터 2편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흥행한 다음에 얘기하시죠'이랬다. 난 (시리즈가) 될 것 같은데 다들 안 믿은 것"이라면서 "흥행이 잘된 덕분에 시리즈가 현실화됐다"며 기뻐했다.
그는 "최대한 1편의 감독, 배우와 함께할 것"이라면서 "이제부터 2편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감독과 배우에게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조광수 대표는 김탁환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을 밝은 분위기의 미스터리 사극으로 만들면 흥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을 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새로움을 살릴 것인가 고민할 때 정약용의 '흠흠신서'를 봤어요. 정약용이 귀양 갔을 때 해결 안 된 사건이 있으면 옆 고을 수령이 모셔가서 사건을 해결하는 게 탐정 같더라고요. 원작의 수사관 대신 탐정을 넣고, 셜록 홈즈에게 왓슨이 있는 것처럼 보조를 코믹한 사람으로 해 보자고 했죠."
그는 이 영화가 청년필름에서 12년 만에 내놓은 흥행작으로, 그 덕분에 20억가량의 회사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청년필름은 1999년 명필름과 함께한 '해피 엔드'를 시작으로 '와니와 준하' '질투는 나의 힘' '분홍신' '후회하지 않아' '올드미스 다이어리' '탈주' 등을 비롯해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까지 영화 13편을 만들었지만 '해피 엔드'를 제외하고는 수익을 남긴 영화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충무로에는 히트작을 만들어내는 것을 '계 탄다'고 표현한다고 한다. "전 곗돈만 부었는데 언제 타느냐고 하면 선배들이 저보고 뒷순위라서 언젠가 탈 테니 포기하지 말라고 했어요."
김조광수 대표는 영화가 좋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지만, 영화보다는 학생운동 하는데 몰두했다고 했다. "제가 83학번인데 전두환 정권이라 학생운동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죠. 인문대 학생회장도 하고 구속도 되고 그러다 1993년에 졸업했어요. 뭘 할까 했는데 독립영화 집단인 영화제작소 청년에서 활동하던 정지우, 김용균 감독이 영화를 같이하자고 했어요."
청년필름은 영화제작소 청년을 모태로 자신을 비롯한 프로듀서 5명과 감독 2명이 1997년 창립했다.
청년필름은 정지우, 김용균 감독의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몇 년 지나니 그것만으로는 회사를 운영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려고 '분홍신'이나 '올드미스 다이어리' 같은 영화를 기획했지만, 기대에 못 미쳤고 그 결과 상업영화보다는 독립영화를 많이 만들게 됐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번갈아 하려고 했는데 상업영화가 잘 안되면서 투자받는 것이 어려워 상업영화를 못 만들 때는 독립영화를 꾸준하게 했죠. 외부에서는 상업영화를 포기하고 독립영화의 길로 가나보다 했겠지만, 저희 의도는 아니었어요."
그는 "코믹한 사극 '조선명탐정'과 구조가 탄탄한 법정 스릴러 '의뢰인'을 해보고 정말 안 되면 독립영화만 할 생각도 했다"고 털어놓으면서 "'조선명탐정' 이후 청년필름도 상업적 기획을 잘할 수 있는 제작사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청년필름은 현재 김조광수 대표를 포함한 프로듀서 4명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으며 4명 가운데 3명이 찬성해야 일을 할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의 제작사다.
프로듀서 1명이 굳이 어떤 영화를 하고 싶다면 청년필름 밖에서 작업해야 한다. 투자 유치나 캐스팅 단계에서는 청년필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최근 개봉해 작품성을 인정받은 독립영화 '혜화, 동'도 그런 경우다. 청년필름의 심현우 프로듀서가 이 작품을 제안했지만 청년필름은 당분간 대중적인 영화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으로 심 프로듀서의 개인 회사인 '비밀의 화원'이 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청년필름이 "무지개 같은 영화사"라면서 각자 개성 있는 색깔이 모여 있듯이 다양한 영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꿈일 수도 있는데 잘 되면 프로듀서들이 다 독립하고 '청년필름' 브랜드를 공유하는 방식도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조선명탐정'으로 돈을 벌었으니 고생한 스태프와 어떤 방식으로든 성과를 나누려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는 저예산 영화를 하더라도 영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돈 벌었다면서 왜 우리 등골을 뽑는 거냐고 할 겁니다. 기존처럼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죠. 희생이 아닌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제작자로 일하면서 '소년, 소년을 만나다' '친구 사이?' 등 동성애를 다룬 단편을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올해 첫 장편 연출작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을 내놓을 계획이다.
휴 그랜트 주연의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에서 제목을 따온 이 영화는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하는 레즈비언 커플과 부모를 속이려는 싱글 게이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위장 결혼식을 올리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릴 예정이다.
퀴어 영화라 캐스팅이 쉽지 않아 애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면서도 이달 안에 주요 캐스팅을 마무리하고 6월께 촬영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조광수 대표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 익히 알려졌다. 그는 퀴어 영화를 계속 연출하는 것에 대해 "내가 동성애자라서 하고 싶기도 하고 나에게 밝은 퀴어 영화를 찍어달라고 하는 기대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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