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 (전주 완산소방서 구조대장)
언젠가 외국영화를 감상하던 때이다. 화재가 발생해 소방차가 출동하자 모든 차량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도로 가장자리로 피하면서 길을 열어주었다. 참 멋지고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화재가 발생하고 5분 정도가 경과되면 화재의 연소 확산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빠르다. 당연히 불길이 커지면서 유독가스까지 많아지고 피해면적은 급격히 증가한다. 반대로 인명구조를 위한 구조대원의 활동은 크게 제한받게 되고, 인명 피해가 초래될 가능성은 배가된다.
응급환자도 마찬가지다. 심정지 및 호흡이 곤란한 사람들의 경우 초기 약 4~6분이 매우 중요한데, 그래서 이른바 '골든타임(Golden Time)'이라고 부른다. 이 짧은 시간 내에 적절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할 경우 환자의 뇌 손상이 시작되어 자칫 사망에 이르거나 중증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중증장애는 본인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커다란 고통일 수밖에 없다. 화재진압·인명구조의 성패와 응급환자의 생명은 결국 5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큰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출동하는 소방차량이나 구조구급차량을 자주 목격한다. 하지만 길거리에는 수많은 차량이 달리고, 골목길 등 이면도로에는 자동차가 빽빽하게 주차돼 있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 차량 때문에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확보하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응급차량 출동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방차량 길 터주기가 과거와 비교해서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매우 비협조적이라고 한다.
얼마전 소방방재청에서 소방차 출동지연의 원인에 대하여 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일반차량이 길을 터주지 않는다'가 6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매우 걱정스런 수치이다.
소방차가 출동 중 교차로에 접근하면 일부 운전자들은 차량의 속도를 높여 무모하게 통과하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멈추고 양보하면 편안하고 안전한데, 스스로 불안하고 위험한 일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운전자들이 소방차의 길을 터주지 않고 있을 때, 사고현장에서는 귀중한 생명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 그 사람이 바로 당신 가족일 수도 있지 않은가.
과거 소방차 출동지연으로 발생된 인명 및 재산피해 사례는 부지기수이며, 특히 2009년 11월 일본인 관광객 등 15명이 사망하여 국제적,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었던 부산 사격장 화재 사건은 대표적이다.
최근 소방방재청에선 소방출동로 확보를 위한 3단계 추진전략을 내놓았는데 범국민 공감대 형성과 법령 및 제도개선, 그리고 불법 주정차 단속 등이다.
현행법상 긴급자동차에 대한 피양, 일시정지 위반 등에 대하여 범칙금, 그리고 고의로 소방차나 구급차의 출동을 방해한 경우 5년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제도개선으로는 소방차 전용차로제나 교통신호 제어시스템(Fire-Lane) 등의 운영을 심도있게 연구·검토하여 시행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와 방안이 마련돼도 시민의 참여 없이 그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이다. 소방차량의 출동시간 단축 여부는 시민들의 '소방차량 길 터주기' 참여와 남을 배려하는 주차의식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아울러 관계당국의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활동도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소방차와 구급차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날아가듯 달리는 사회를 기대한다.
/ 김강호 (전주 완산소방서 구조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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