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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천륜을 끊고 숨기고 의심하다

또다시 '출생의 비밀'이 안방극장에 범람하고 있다. 그로 인한 패륜도 잇따른다. 천륜(天倫)은 끊임없이 의심받고 이용된다. 너무나 선정적이다.

 

물론 출생의 비밀은 신데렐라 판타지와 함께 인류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한 고전적인 스토리 아이템이다. 하지만 성공한 작품에는 그 위에 늘 플러스 알파가 있었다.

 

관계에 대한 깊이있는 해석, 세밀한 감정묘사, 삶의 부조리와 그럼에도 싹트는 희망과 화해에 관한 밀도 있는 접근이 있었다. 혹은 배우의 명연기가 뻔한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2011 한국 드라마는 상상력 빈곤의 늪에 빠져 천박한 접근으로 천륜을 난도질하고 있다.

 

 

 

◇천륜을 숨기고 의심하다 = 현재 드라마 시청률에서 1,2위를 기록 중인 KBS 1TV 일일극 '웃어라 동해야'와 MBC TV 주말극 '욕망의 불꽃'에서는 걸핏하면 유전자 검사가 진행된다.

 

두 드라마 모두 높은 시청률이 무색하게 극악스러운 악녀를 중심으로 하는 억지스러운 스토리 전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무엇보다 천륜을 놓고 '장난질'을 해 기암 하게 만든다. 심지어 전개마저 느려 주인공을 빼고는 모두가 아는 천륜에 대한 비밀을 질질 끌고 간다.

 

특히 '웃어라 동해야'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동해(지창욱 분)와 도진(이장우)이 이복형제라는 사실에 이어 정신지체인 동해 엄마 안나(도지원)가 카멜리아 호텔 회장의 잃어버린 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의심하는 것에 전적으로 기댄 전형적인 막장 드라마다.

 

'욕망의 불꽃'은 '웃어라 동해야'에 비해서는 출연진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점수를 얻고 있지만 패륜에 기대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다.

 

연인 사이인 민재(유승호)와 인기(서우)가 각각 나영(신은경)의 의붓 아들과 20여 년 만에 그 존재를 알게된 친딸이라는 기막힌 설정, 그같은 사실을 알고도 나영이 성공을 위해 친딸을 또다시 버리려 하는 데다 이 엄청난 비밀을 민재만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야 알게 되는 스토리에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SBS TV 주말극 '신기생뎐' 역시 사란(임수향)이 어산(한진희)과 순덕(김혜선)의 혼외정사를 통해 생긴 딸이라는 비밀을 묻어둔 채 놀라울 정도로 심심한 이야기를 뻔뻔하게 끌어가고 있다.

 

MBC TV 주말극 '반짝반짝 빛나는'과 월화극 '짝패'는 아예 출생의 비밀, 뒤바뀐 운명에서 출발하는 드라마다. 아직 초반이고, 다른 작품에 비해 개연성 있는 단단한 스토리 덕에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고 있지만 두 드라마 역시 주인공들의 뒤바뀐 운명에만 천착하다가는 자칫 위험해질 수 있다.

 

◇필요하면 자식은 언제든 버린다 = KBS 2TV 수목극 '가시나무새'의 유경(김민정)은 성공을 위해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친구인 정은(한혜진)에게 준다. 심지어 병원 출산기록에도 자신의 이름 대신 정은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남긴다. 자식을 버리는 것도 모자라 출산한 사실조차 세상에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

 

 

SBS TV 일일극 '호박꽃 순정'의 준선(배종옥)도 욕망을 위해 세살배기 딸 순정(이청아)을 버리고 앞만보고 질주한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20대가 된 딸과 재회했지만 그런 딸의 존재가 귀찮고 두려우며 골치 아플 뿐이다.

 

'욕망의 불꽃'의 나영이 제아무리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눈이 멀었다고 하지만, 친딸 인기를 자기 필요에 따라 수시로 버리고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은 '극적 장치'라는 명분으로도 좀체 이해되지 않는다.

 

◇자극적 설정에만 의존..상상력 빈곤 심각 = 21세기에도 여전히 산부인과에서 아기가 뒤바뀌는 일이 벌어지고, 아이를 버리는 패륜이 이어지고 있다지만 그러한 '사실'에만 머물러서는 드라마가 되지 못한다.

 

자극적 설정에서 출발했어도 전개에서만큼은 설득력을 줄 수 있는 장치와 치밀한 심리 묘사가 뒷받침되면 얼마든지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음에도, 현재 안방극장에서는 그러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한 중견 드라마 작가는 22일 "요즘 작가들이 상상력 빈곤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시청률 압박에 시달리면서 그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진 게 사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같은 출생의 비밀이라도 과거에는 깊이 있는 스토리를 그렸지만 요즘에는 그러기에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라며 "다들 문제를 알면서도 당장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청률 40%를 넘나드는 '웃어라 동해야'의 출연진이 높은 시청률에도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문제점을 알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한 배우는 "시청률이 높아서 좋기는 하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감정 표현이 힘들고 시청자께 미안하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이쯤 되면 누구를 위한 출생의 비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작가와 방송사, 제작사가 모두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한국 드라마가 순식간에 퇴보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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