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봉 (전문건설협회 전북도회 사무처장)
1980년대에 윤흥길의 소설 '완장'이 발표됐다. 김제 백산저수지를 무대로 쓰여진 이 소설은 날실업자였던 주인공이 어느 날 '저수지 감시원'이란 감투(?)를 쓰게 된 뒤 낚시꾼들 위에 군림하며 알량한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당시 이 소설은 한국전쟁 이후 정치권력의 폭력성을 풍자하는 대표작으로 평가 받았다.
소설 '완장'이 발표되고 세월이 30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우리 사회의 권력지향성과 권력의 폭력성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 정도가 타인의 인격을 말살하고 심지어 생명조차 위태롭게 하는 지경으로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 전투경찰대 내부의 가혹행위가 대원들의 자살과 탈영으로까지 이어지자 정부는 해당부대를 해체하고 폭력을 행사한 선임대원들에 대해 일정기간 정신교육 후 폭력의 정도에 따라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키로 하기에 이르렀다. 단지 입대가 빨랐다는 알량한 '완장' 하나만으로 후임대원들의 인격을 말살하는 가혹행위를 죄의식 없이 자행하는 그들의 행동에서 우리는 또 다른 '완장'을 보고 있는 것이다.
'완장' 지향성은 우리 사회 도처에 널려있다.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시민단체를 빙자한 수많은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결성되면서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타인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또 언론자유화에 편승한 신흥 재력가의 언론사 소유가 증가하면서 그 폐해 또한 만만치 않은 실정이며 자치단체장의 매관매직도 한 때 사회문제화 됐었다. 이 같은 '완장' 지향성은 개인에게까지 이어져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악플달기, 소비자권리를 빙자한 자영업자 협박 등 개인, 집단 할 것 없이 남을 해하는 행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완장'의 폐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완장'에 편승한 아첨꾼들이 늘어나면서 조직의 질서가 문란해지고 경제 주체의 경제활동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실력과 노력 보다 뇌물로 진급이 보장되는 사회, 기술개발과 경영합리화보다 선거 기여도에 의해 일감이 보장되는 사회로 퇴보하는 것이다.
이 같은 부정부패, 어거지가 난무하는 사회에는 기회주의자들이 권력을 얻기위해 모사를 친다. 그 모사가 성공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속내를 숨기기 위해 사회정화를 내세우며 조무래기 완장을 청소한다. 5·16 직후의 국토재건단, 12·12 이후 삼청교육대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아부와 남의 실적 가로채기, 뇌물로 승진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조직에서는 누구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는다. 성실한 경영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기업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기업의 경쟁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또다른 급진적 사회변혁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는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 그것은 타인의 근로의욕을 떨어트리는 조직원의 재교육이나 우량기업의 시장진출 기회를 열어주는 제도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미 일부 선진국에서 시행중인 공직자나 민간근로자에 대한 정기적 정신감정제도를 도입해야 할 단계다. 또 단순 기회평등의 정부입찰제도 등도 손볼 때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근로자들에게 어떤 형태든 스트레스를 준다. 하지만 비효율적 요소의 제거는 근로자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면서 생산성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이제는 효율성 강조보다 비효율적 요소의 제거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경영전략을 도입, 완장 없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 한기봉 (전문건설협회 전북도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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