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원(교육부장)
요즘 중·고생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가 두발에 관한 것이다. 도교육청의 지침과 달리 학교 현장에는 규제가 너무 많다며 저마다 불만과 억울함으로 호소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일부 교사들 사이에서는 학생들의 정신이 해이해지고 학습 분위기가 산만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도 많다.
이러한 분위기는 학생인권조례와 학교생활규정 등에 대한 논의에서 발단이 됐다.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써 학생들의 인권보장 수준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높아져야 한다는 데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요즘의 학생인권 논의는 지나치게 형식에 얽매이면서 정치싸움으로 흐르는 경향도 짙다.
우선, 자율학습 논의를 살펴보자. 자율학습 선택권을 학생과 학부모가 가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부에 대한 기대도 높지 않고 흥미도 없는 아이들을 밤 늦게까지 무리하게 붙잡아두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렇다고 도교육청이 박수받을 일도 아니다. 자율학습 지침을 마련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학교장을 혼내주겠다는 식의 엄포는 괜히 학생들의 어깨에 잔뜩 힘만 실어줬다. 학교 현장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학교 구성원의 판단력과 자율성을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전북도교육청은 지난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와 관련해서도 곤욕을 치렀다. 시험을 치르지 않겠다는 학생들에 대해서만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면 되는데, 굳이 먼저 나서서 "안볼 사람은 안 봐도 되니 신청하라"며 부산을 떤 데서 비롯됐다.
일선 학교에서는 요즘 학교생활규정을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주요 관심은 '체벌'에 관한 것이다. 신체나 도구를 이용한 체벌을 금지하자는데는 모두가 공감한다. 다만 교과부는 '기타 훈육·훈계의 방법'을 학교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고, 도교육청은 '간접체벌'도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공허한 말싸움이라는 생각도 든다. 도교육청은 '신체적인 고통이 따르느냐' 여부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하지만, 간접체벌의 경계가 너무나 흐릿하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탁구 스매싱이나 축구 페널티킥 연습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간접체벌이 된다. 반대로 적당한 수준의 스매싱이나 페널티킥 연습은 훈육·훈계가 아니라 오히려 포상이 될 수도 있다. 똑같은 행위라고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체벌이 될 수도 있고, 포상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일선 학교의 훈육·훈계의 방법은 교과부나 도교육청이 아니라 학교의 실정을 가장 잘아는 학교 구성원들이 결정해햐 한다.
도교육청은 그동안 학교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자율을 누누히 강조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너무 많은 부분을 간섭하고 통제하고 있다. '모든 것을 도교육청에서 지시하니 학교장이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우리는 70년대에 이미 새마을운동을 겪어 봤다. 국민 모두가 참여해서 마을길도 넓히고 초가집도 없앴다. 성과도 있지만, 잃은 것도 많다. 소중한 전통 문화유산들이 많이 사라졌고, 획일주의에 길들여지기도 했다.
학교마다 문화와 전통이 있고 풍토가 다르다. 그 차이를 무시하고, 모두를 똑같은 기준과 잣대로 규제한다는 것은 독선이다. 이들은 학교에서 획일주의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배우고 차이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 이성원(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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