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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 배춧값 폭락에 농심 숯덩이

배추밭 갈아 엎는 익산 여산면 농가

7일 익산시 여산면 태성리 현천마을에서 배추 1만 8000여포기를 갈아 엎은 이칠우씨가 배추를 바라보며 침통해 하고 있다. 추성수(chss78@jjan.kr)

7일 오전 10시 익산시 여산면 태성리 현천마을.

 

농로를 따라 로터리를 매단 트랙터 한 대가 비닐하우스로 들어서자 마자 봄배추가 로터리 쇳날에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 트랙터를 모는 농민의 얼굴은 모든 것을 자포자기 한 듯 표정이 없다.

 

30여분도 채 안돼 826㎡(250평)에 심어진 배추 3000포기를 모두 갈아 엎은 농민은 트랙터를 몰고 옆 비닐하우스로 자리를 옮긴다.

 

"자식처럼 키운 배추를 갈아엎을 수 밖에 없으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날 트랙터에 올라타 배추 갈아엎기에 나선 이칠우 씨(68).

 

그는 이날 하우스 6개동에 심어진 배추 1만8000여 포기를 모두 갈아 엎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혹시 냉해나 걸리지 않을까 보온덮개를 덮어주고,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기라도 하면 개폐기를 여는 등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성을 다했던 그가 이날 배추밭 갈아엎기에 나선 것은 봄배추값 대폭락 때문.

 

배추 한 포기를 재배하려면 모종·비료값 등 생산비 원가만도 대략 500원 가량이 들어가지만 최근의 도매시세는 300원으로, 인건비는 고사하고 투자 원금조차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설령 도매시장에 출하하더라도 수송비·중매인 수수료·작업비 등을 빼고 나면 오히려 웃돈을 얹어줘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정부의 정책에 늘상 뒷통수를 당하는 것은 농민입니다. 그 놈의 물가안정 폭탄도 꼭 농민들한테만 떨어지고 있으니..."

 

50여년간 줄곧 벼농사만 지어온 그는 난생 처음 배추 재배에 나섰다.

 

지난해 이상기온으로 김장배추 3통들이 한 망 가격이 최고 2만원까지 급등하자 정부에서는 봄배추 특수 예측을 내놓았고, 이에 작목전환을 결심한 그는 곧바로 논을 갈아 엎고 봄배추 재배를 위한 비닐하우스 6개동을 설치했다.

 

정부 예측을 믿고 내심 특수를 확신한 그는 금융기관으로부터 3000만원까지 대출 받아 본격적인 배추재배에 들어갔다. 그러나 80여일 동안 힘들게 농사를 지은 결과는 빚더미였다.

 

많은 농민들이 이 씨와 똑같은 생각으로 봄배추 재배에 나서면서 과잉공급에 따른 배추값 대폭락으로 이어졌고, 업친데 덮친격으로 지난해의 배추파동을 우려한 유통업자들이 중국산 김치 수입 물량을 늘리면서 배추값 대폭락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 씨의 시름은 여기서 모두 끝난 게 아니다.

 

갈아엎어진 배추들이 땅 속으로 썩어들어가 가스를 발생하면 타작물 재배도 여의치 않기 때문에 더 잘게 부수고 부숴 햇볕에 바싹 말려야 한다. 다음 작물 재배 준비를 위해 앞으로 보름가량 밤낮을 가리지 않는 험난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정부의 계획성 없는 정책에 의한 이런 도박판을 앞으로 언제 또 치러야할지 걱정이 앞선다"는 그는"최소한 배추 1포기에 1,000원이라도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면서 "나 같은 농민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익산지역 봄배추 재배면적은 전체 15ha 75만여 포기로, 이날 현재까지 3ha의 15만여 포기는 출하시기를 놓쳐 갈아엎힐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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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철호 eomch@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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